양혁승(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인간의 욕구는 어느 선에서 충족될 수 있을까?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Abraham H. Malsow)의 욕구 5단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단계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다섯 가지 욕구를 가지고 살아간다.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과 애정의 욕구, 자존(自尊)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가 그것이다. 가장 낮은 단계의 두 가지 욕구가 물질적 자원을 통해 충족될 수 있는 생존과 관련된 기본 욕구라면, 그 외 세 가지 상위 욕구들은 사회적 욕구와 정신적인 욕구들이다.

물론 상위의 욕구 충족이 물질적 자원과 무관하지는 않다. 물질적 자원만으로 상위의 욕구를 충족할 수는 없지만, 사회적 관계 유지, 자존감 확보, 자아실현을 위한 활동들을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경제적 자원이 필수적이다.

자, 그렇다면 위 다섯 가지 욕구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적정 수준의 경제력을 가진 개인을 생각해보자. 이 사람은 욕구가 충족될 수 있는 조건을 갖췄기에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독일 철학자 헤겔은 인간은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을 때 자아 독립성과 자기 정체성을 갖게 된다고 통찰하였다. 따라서 인간들 사이의 모든 갈등은 인정 투쟁의 성격을 갖는다.

상대적 지위 확보를 위한 욕망이나 타인의 욕구를 욕망하는 그 욕망은 본질상 '이만하면 됐다'라는 자족을 거부하는 끝없는 욕망이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수준에서 보면 오늘날 우리나라 중산층은 조선시대 왕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고 하지만, 그만한 충족감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현대 산업문명은 인간의 그러한 욕망을 부추기며 문명 확장의 원동력으로 삼아 왔다. 경제가 성장하여 사회구성원들의 물질적 필요가 적정 수준으로 충족되더라도 '상대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경쟁은 계속된다. 남들이 가진 것보다 좀 더 크고 좀 더 고급스러운 제품과 서비스, 희소성이 높은 사치품 등에 대한 소비 경쟁이 광고되고 경제 성장의 필요성을 끝없이 부추긴다. '좀 더 큰 규모로, 좀 더 효율적으로, 좀 더 확장적으로'라는 생산 논리는 끝없는 욕망에 기반한 소비주의 위에 올라타 팽창적 산업 문명을 정당화한다.

문제는 자연생태계의 수용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데 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겪고 있는 기후 환경 위기와 팬데믹을 야기하는 바이러스의 빈번한 습격은 산업 문명이 기반하고 있는 끝없는 소비주의의 확장과 팽창적 생산이 자연생태계의 수용 능력을 넘어섰으며, 그와 같은 문명이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강력한 경고음이다. 그뿐 아니라, 상대적 지위 구축을 위한 끝없는 인정 투쟁은 사회 구성원 간 연대 의식과 공동체성을 약화시키고 인간 사회를 각자도생의 정글로 전락시킨다.

그 욕망을 절제할 것인가, 아니면 그 욕망의 노예가 되어 계속 내달릴 것인가? 미래 세대로 하여금 갈수록 악화하는 각자도생의 정글 속에서 살게 할 것인가, 아니면 각자의 개성과 역량을 발휘하면서도 서로 의지하고 어깨동무할 수 있는 공동체 속에서 살게 할 것인가?

지금 시점에서 선택의 여유는 없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올라탄 현대 산업문명이 한계에 도달한 지금 우리는 지구생태계와 사회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되살려낼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타자를 인정 투쟁의 대상이 아닌 환대의 대상이자 내 삶의 존립을 가능케 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새로운 길로 들어서려면 우리는 익숙한 생활양식을 낯선 생활양식으로 바꿔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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