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율(해남역사클럽 회원)

 
 

요즈음 코로나 위기를 벗어나며 지역에서는 문화예술 행사의 한 축으로 해남의 고대사를 주제로 하는 학술대회와 세미나, 교육 프로그램은 물론 역사축제까지 추진되고 있다. 나름 반가운 일이다.

아마도 지역민 대부분이 '불경기에 먹고 살기도 힘든데 고대사가 나하고 뭔 상관이여'라고 반문하리라 여겨진다. 그렇더라도 역사는 철학과 더불어 인류가 쌓아 온 집단적 지혜와 가치판단을 시행착오와 희생을 자양분으로 체계화한 '삶의 궤적'이다. 생활인으로서 '역사'의 필요성은 '삶의 어느 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가치판단과 진로 선택의 기준'을 제시해 준다는 점일 것이다.

과거 열혈 사학도로서 우리 지역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역사 관련 행사는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마냥 즐거울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 우려스럽다. 마한 소국이 어느 순간 '신미제국'이 되어 제국의 영광 운운하는 현수막까지 내걸리고 있는 형편이다. 누군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진나라 사서에 신미제국이라는 기사가 보인다. 장화열전의 문맥 상 이곳은 베이징 동북쪽 발해만 연안에 위치한다. 그런데 왜 해남이 신미제국이 되는 걸까? 그 시작은 식민사학의 거두 쓰다 소키치와 스에마쓰 야스카즈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일본서기 신공황후 기사에 보이는 침미다례를 음운학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해남 강진이라 주장했다. '임나일본부'설을 조작하며 내놓은 황당한 주장이다. 궁금한 점은 '신미제국과 침미다례가 같은 지역일까' 하는 의문이다. 어느 누구도, 수많은 그 어떤 논문에도 이에 대한 논리적 귀결을 찾아볼 수 없다.

현재 학계 논문들을 살펴보면 신미제국 혹은 침미다례의 위치로 나주(최성락), 해남(이도학), 강진(이병도), 고흥(임영진) 제주도(김영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들 주장 모두가 학설일 뿐 검증된 바 없다. 원인은 일본제국 시기 '식민사학'의 논리를 '보물'처럼 여기는 '한국고대사학회' 구성원들 때문이다. 이들은 일본의 정체성이 형성되던 시기 과장되고 왜곡된 일본서기는 숭배하지만 우리나라의 관찬 사서인 '삼국사기'는 믿지 않는다. 삼국사기 불신론! 이 또한 쓰다 소키치, 이마니시 류와 스에마쓰 야스카즈의 작품이다.

"우리는 비록 전쟁에 패했지만,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인이 제정신을 차리고 옛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놨다. 조선인들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아베 노부유키의 저주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들의 열열한 지지자들은 지역에 군림하고 있는 '문화권력자'들이다. 교수, 기자, 문화예술인 등 다양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지식 카르텔을 형성하며 학문의 다양성을 폄훼하고 지역의 문화자산을 독점하고 왜곡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식민권력의 사생아들에게 호의적인 지자체 의원들과 공무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적어도 문헌사적 교차 검증과 유물유적의 현장성과 사회성을 밝히는 작업부터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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