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시기에 읽었던 소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1976)이다. 450쪽이 넘어 소설치고는 분량 압박이 있다. 당시 처음 알게 된 한센병 환자에 대한 내용이라 호기심이 갔다. 많은 분량에도 밤을 새워가며 하루 만에 읽었다. 소설 내용은 조백헌 소록도병원장이 섬을 환자들의 새로운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노력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난달 29일 광주 상무시민공원에서 열린 재광해남군향우회의 향우가족 한마당축제를 지켜보면서 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잔상이 강하게 다가온다. 한마당축제는 고향을 떠난 해남인들이 1년에 한 번씩 모여 친목을 다지는 자리이다. 이날 기념식은 1시간 넘게 진행됐다. 저마다 마이크를 잡고 고향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이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어떻게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없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20~30대 청년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도 허전함으로 다가왔다.

사실 이게 향우회 축제에서만 불거진 문제는 아니다. 올해 해남에서 열린 각종 행사도 엇비슷하다. 단지 친목을 위한 친목 행사에 그친 모습이다. 해남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지만 알맹이 없이 던지는 말 잔치에 그칠 뿐이다. 정치인이 참석하는 자리에 가면 정체된 지역 발전과 매년 줄어드는 청년 문제는 안중에 없고 표 계산에 여념이 없다. 그들만의 천국에 빠져 현실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전국에 흩어져있는 해남군향우회에 기대를 걸어본다. 내년 1월부터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된다. 취지는 예산을 늘려 더 나은 지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향우들이 고향 발전에 현실적인 관심을 가져달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이제는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을 만들기 위해 다 함께 고민을 나눠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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