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서 수많은 꽃다운 젊은이를 잃었다. 핼러윈데이(10월 31일)를 이틀 앞둔 지난 주말 밤 용산구 이태원의 좁은 골목길에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면서 156명(남성 55명, 여성 101명)이 압사하고 151명이 다쳤다. 이번 참사에 광주와 전남에 연고를 두거나 고향인 젊은이도 10명이 희생됐고 외국인도 26명 포함됐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극이 황망함으로 다가온다. 졸지에 아들, 딸을 잃은 부모에게 이런 날벼락은 없다. 취업턱 내러 갔다가 당하고 엄마, 이모와 함께 희생된 여중생, 17년 단짝 친구와 죽은 안타까운 사연들이 비통함을 던져준다.

이태원은 이번 참사로 또 하나의 흑역사를 쓰게 됐다. 이곳에선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주둔하면서 숱한 몹쓸 짓을 했고 300년이 흐른 뒤 일제가 다시 군사기지로 삼았다. 일제가 패망하자 대신 미군기지가 들어서고 외국인도 모여들었다. 그러면서 미국 축제인 핼러윈의 중심이 되고 참사의 현장이 되고 말았다.

이태원(梨泰院)의 지명은 배나무가 많아 불리게 됐다. 나주 고막원, 세종 조치원처럼 '원(院)'은 조선시대 공무로 먼 길을 가야 하는 관원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곳이다. 말을 빌려주던 '역(驛)'과 붙어있어 역원이라고 부른 경우가 많았다. 진도나 전라우수영으로 가는 교통 요지인 해남에도 관원과 사대부가 이용한 '3역 3원'의 기록이 있다. 남리역(황산면 남리), 녹산역(해남읍 신안리), 별진역(계곡면 성진리)이 '3역'이고, 황산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만희원, 적량원, 삼지원이 '3원'이다.

이태원 희생자는 밀레니엄 세대와 Z세대를 아우르는 MZ세대(1981~2010년생)이다. 외국 문화에 익숙하고 소셜미디어(SNS)가 일상이다. 10월 31일에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시월의 마지막 밤을'로 시작하는 이용의 노래 '잊혀진 계절'이 생각나면 구세대라고 한다. MZ세대는 핼러윈을 떠올린다.

핼러윈(Halloween)은 지금의 프랑스, 영국 등에서 살던 고대 켈트족의 새해(11월 1일) 행사인 '삼하인(Samhain) 축제'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다. 켈트족은 이날 죽은 사람의 혼령이 세상에 나온다고 여겼다. 그래서 음식을 내놓고 악령을 쫓아내는 의식을 치르며 망령이 알아보지 못하게 변장했다고 한다. 9세기 무렵 가톨릭 교회가 켈트족의 새해 첫날을 '모든 성인 대축일(All Saints Day)'로 지정하면서 전날의 삼하인 축제 전통도 이어갔다. 그래서 핼러윈은 '신성한 전날 밤(hallow eve)'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런 문화가 아일랜드 등 유럽인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함께 들어가 지금은 미국의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는 2000년대 초 원어민 강사에 의해 영어 유치원과 학원에서 핼러윈 파티로 정착하고 기업의 상술이 덧칠되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국식 핼러윈 문화가 급속히 확산됐다.

이태원 참사는 수준 낮은 안전의식이 바탕에 깔렸더라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8년 전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참사 사흘 전 상인회가 구청에 안전사고 대책을 요구했는가 하면, 4시간 전부터 압사 위험을 알리는 11건의 112신고도 쏟아졌다. 이를 뭉개버린 지자체와 경찰이 사실상 1차 책임자이다. 그런데도 '나랏밥' 먹는 공직자들이 핑계와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모습은 국민을 더욱 우울하게 한다.

이태원 대참사는 상당 기간 트라우마로 남겠지만 이 또한 점차 잊혀질 것이다. 다만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도 좋으니 다시는 이런 참담한 일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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