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률(교사)

 
 

해남이 늙어가고 있다. 고령화에 대한 걱정이 여기저기 쏟아진다. 머잖아 소멸될 거란 우울한 예측도 나온다. 사람들은 걱정한다지만 그저 걱정할 뿐이다. 대책이 없다. 정치권이든 지역행정이든 도대체 감을 잡지 못한다.

어려울수록 기회가 많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기회만큼 탈도 많다. 지금 한국은 올드 보이들의 천국인양 쾌재와 한숨이 뒤엉킨다. 낡아도 너무 낡은 올드 보이들이 정치권과 정부의 행정을 장악하고 있다. 거기에 젊은 꼰대들 일부가 가세하는 형국이다. 이 젊은 꼰대들은 좌충우돌하다가 소모품으로 버려지기도 하는데, 젊은 꼰대를 쫓던 젊은이들의 실망과 그 부류에 낄 수 없는 다수 젊은이들의 절망은 이미 '헬조선'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

올드 보이는 나이의 올드일 수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생각의 올드함이다. 나이들어 생각이 굳는 것이야 그러려니 받아들이는데, 그 올드한 기득권을 따르는 무리들의 비주체적 무비판적 이기주의적 삶은 정말 꼴불견이다.

한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석학 신영복 선생을 존경한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로 몰아가는 이 올드 보이들은 일본의 조선 침략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까지 무덤에서 꺼내 들었다. 더 무서운 것은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논리를 마약처럼 유통하고 있다.

최근 주변의 한 공공기관장이 직원들에게 '자신이 책임질 일을 하지 않도록 단속을 잘하라'고 강조하셨단다. 그는 뭐 하려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걸까? 그 말 그대로 돌려두고 싶다. "책임질 일을 하지 않으려거든 당장 그만두라, 그러면 책임질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올드 보이들이 주축을 이룰수록 그 사회는 시끄럽다. 286 PC들과 좀 낫다는 386 PC들이 인공지능을 조종하려 드는 꼴이다. 삐거덕거리는 소음이 요란할 수밖에.

해남사회는 어떤가? 올드한 정치권과 행정, 올드 보이들이 충원되는 대부분의 기관들은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더 나아가 혈연을 내세워 힘을 장악하려는 일부 종친회와 선후배가 뭉쳐 꿍꿍이를 해대는 일부 학교 출신들과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해 처먹는 지역 할거 세력들, 해남사람 중 당당하게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한술 더 뜨자면, 해남이 신분제 사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연, 혈연, 학연에 의한 신분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품을 좀 더 넓혀야 하지 않겠는가? 내 자식에게, 내 손주들에게 이득을 좇아 아귀다툼하며 살라고 가르치겠는가? 부끄러움은 개나 줘버리라고, 그런 삶이 좋은 삶이라고, 그런 사람이 해남사람이라고 가르칠 수 있는가?

이쯤에서 '해남은, 해남사람은 무엇인가' 질문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올드한 과거에 매달려 해남을 얘기해야 하는가? 이제 해남의 자연, 해남의 문화, 해남의 경제, 해남의 어린이·청년·노인의 모습 등 다양한 주제의 질문지를 만들고 해남을 구체화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올드 보이들에게 집중된 것을 나누고, 청년이 주축이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중심에 세워 보면 어떻겠는가? 해남 아이들이 학교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해남 학교로 오고 싶도록 해남만의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구분포의 주축을 이루는 농민이 군정의 핵심이 되게 하는 건 어떤가?

해남만이라도 올드 보이들의 온화한 미소와 청년의 함성이 어우러지도록 해보면 어떻겠는가?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올드 보이들의 윽박지름과 동격이 되게 하면 어떻겠는가? 문화가 달라지고, 삶이 달라지고, 환경이 살아나는 해남이 그저 꿈이기만 하겠는가? 해남사람 해남에서 길이 보전하세.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