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립 기관 이전이나 신설이 예정되면 지방자치단체들이 너도나도 유치전에 뛰어든다. 꿀밭에 몰려드는 벌떼가 연상될 정도이다. 입지가 결정되면 '정치적 결과'라는 뒷말도 으레 따르곤 한다.

전남도청 이전 과정을 되돌아본다. 광주가 직할시로 승격된 7년 뒤인 1993년 대통령 특별담화로 도청 이전이 발표됐다. 단지 도청만 옮기는 게 아니라 도교육청, 경찰청, 농협본부 등 수많은 유관기관이 뒤따르는 대형 프로젝트이다. 따라서 도청 이전은 정치권과 지역의 최대 이슈가 됐고 갖은 소문이 난무했다.

급기야 이전 계획을 없던 일로 하고 광주와 전남을 통합하자는 의견이 고개를 들었다. 숱한 논란을 뒤로하고 1999년 무안 삼향으로 결정되자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실렸다는 얘기가 터져 나왔다. 삼향 남악리는 DJ의 정치기반인 목포와 지리적으로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당시 허경만 전남도지사의 고향인 순천을 앞세운 동부권에선 서운함과 홀대론이 쏟아졌다. 그래서인지 도청 이전지가 결정되던 해에 여수가 국가 계획으로 '2010년 해양엑스포 개최 후보지'가 됐다. 이른바 '빅딜'(큰 거래)이라고 했다. 여수는 이후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의 투표에서 개최지(등록박람회)를 중국 상하이에 내주고, 이보다 규모가 작은 박람회(인정)를 2012년 개최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지난해 광주에서 강진으로 옮긴 전남도인재개발원(옛 전남도공무원교육원)의 입지에 대해 많은 공무원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교육기관은 무엇보다 우수한 강사진이 중요한 데 KTX 교통편도 없는 곳에 수도권의 강사들이 오겠느냐는 것이다. 당시 이낙연 도지사의 '정치'가 녹아있는 결정이라는 말들이 나왔다.

전남지역 7개 지자체가 유치에 나섰던 국립해양수산박물관 입지가 완도로 결정되자 뒷말이 여지없이 나온다. 김영록 도지사가 자신의 고향이 선정되도록 입김을 넣었다는 것이다. 김 지사 입장에서 이런 곱지 않은 시선 자체가 억울할 수 있다. 평가점수가 공개되지 않아 이런 의혹을 더욱 키우기도 했다. 수험생이 왜 떨어졌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는 데 말이다.

이번 유치전에 뛰어든 해남은 예선(1차 심사)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해남 곳곳에 내걸린 그 많던 '유치 기원' 현수막의 잔상이 남는다. 1차에서 탈락한 여수에서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동부권 홀대를 주장하며 비판 여론이 거세지만 해남은 속앓이만 하는 분위기이다. 완도, 강진과 협약을 맺은 터라 '완도 선정'에 드러내놓고 내색하긴 옹색하기도 하다.

해남은 해양수산박물관 건립을 처음 제안했던 터라 변죽만 울린 꼴이 됐다. 2~3년 전 전남도가 2억 원을 들여 의뢰한 건립 타당성 용역에서도 1순위에 올라 기대치도 높았다. 유치 의지를 다지기 위해 군민의 40%에 가까운 2만7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내고 군의회와 이장단, 향우까지 나섰다. 결과적으로 유치에 공들인 행정력과 민간의 노력이 헛물을 켠 셈이 되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근데 장보고를 앞세운 완도는 여러 시설과 조건에서 해양수산박물관이 들어서는데 부족하지 않다.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더라도 생뚱맞지는 않다. 완도의 관문인 해남만큼은 비록 경쟁자이긴 했더라도 축하해주는 어른스러움을 보여야 한다.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늘상 있는 일)라는 말이 있다. 오늘의 실패가 내일엔 성공의 어머니가 되도록 낙담하지 말고 분발을 다짐하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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