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한가운데 10월의 달력은 숨 가쁘다. 국군의날을 시작으로 노인의 날, 한글날, 체육의 날, 금융의 날(옛 저축의 날), 지방자치의 날 등 각종 기념일로 빼곡하다. 10월의 달력은 한 해를 시작하는 1월과 요일이 완전 닮은꼴이다. (2월이 28일간이라는 조건이 붙지만)1~9월의 일수(273일)가 7(1주일)의 배수인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1월과 10월은 토요일에 시작해서 월요일에 끝난다.

코로나19 유행으로 2년 가까이 얼굴 절반 정도를 가려야 했던 마스크도 벗어 던지게 됐다. 여전히 '마스크족'이 대세이지만 예식장마다 하객으로 넘친다. 저마다 얼굴 내미느라 한 달 내내 주말과 휴일도 반납해야 할 지경이다. 부활한 축제장에도 오랜만에 인파로 붐빈다. 9월과 10월을 잇는 사흘, 울돌목 일원에서 열린 명량대첩축제에 15만 명이 찾았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가을을 노래하는 소리가 봇물 터지듯 요란하다.

10월의 가을은 단연 국화의 계절이다. 국화축제만도 수십 개에 이른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보다/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천둥은 먹구름 속에서/또 그렇게 울었나보다/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든/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노오란 네 꽃잎이 필라고/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 시인이 국화꽃이 피어나기까지 아픔과 아름다움을 노래한 '국화 옆에서'(1947년 발표)이다. 전북 고창 출신인 서정주는 광주학생운동으로 구속되고 퇴학까지 당했으나 이후 잇단 친일문학을 발표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낙인됐다. 그럼에도 그의 시만큼은 지금도 일부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생명력 넘치는 시어와 소재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가을하다'의 말처럼 가을의 중심인 10월은 수확의 계절이다. 가을을 일컫는 한자 추(秋)를 파자(破字)하면 벼(禾)와 불(火)이다. 곡식이 햇볕에 무르익어가는 계절이다. 가을 햇살은 자외선도 강하지 않아 적당히 쬐면 뼈 건강에도 좋다. 그래서인지 '봄볕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 딸 내보낸다'는 속담이 생겨났다. 이젠 며느리, 딸 구분해 내보내지 말고 함께 나가보자. 나들이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엊그제 가을을 재촉하는 단비가 내리더니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찬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한로(寒露)가 어느덧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10월의 하루하루가 곶감 빼먹듯 저멀리 사라져간다.

예전에 10월의 마지막 날 어김없이 전파를 타던 노래가 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다. 1982년에 발표됐으니 어언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노래가 대박을 내면서 이용을 잊혀지지 않는 가수로 만들었다.

결실의 계절 10월이 깊어간다. 추수기를 맞은 농촌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밤새 가을비가 쏟아지던 날, 해남에서는 농민대회가 열렸다. 행사 시간이 가까워지자 내리던 비도 멈췄다. 농민들이 몰고 나온 500대가 넘는 차량이 도로를 메웠다. 예전만 못하는 참가자 수가 농촌의 고령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45년 만에 최대로 하락했다는 쌀값이 빛바랜 황금 들녘으로 만들었다. 농촌 들녘에 흘린 땀방울에 걸맞는 수확의 기쁨을 하루빨리 되찾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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