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준공 2년 만에 새성전 헌당예배 올려
일제강점기 계몽운동 주도… 사회운동 산실
윤요한 목사 부임 후 신도 부쩍 늘며 '부흥'

▲ 원진교회 교회탑의 '사랑의 종' 앞에 선 윤요한 목사와 예배 모습<아래>.
▲ 원진교회 교회탑의 '사랑의 종' 앞에 선 윤요한 목사와 예배 모습<아래>.
 
 

해남읍에서 완도 방향의 국도를 잠시 달리다 빠져나와 삼산천 어성교를 지나면 시골 동네로 제법 큰 원진마을이 나온다. 이곳 마을 입구에 11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원진교회가 자리한다. 일제강점기 계몽운동과 문맹 퇴치에 앞장서고 한 세기 이상 사회 활동가의 산실이기도 하다.

원진교회(담임목사 윤요한)가 24일 오전 11시 창립 115주년 기념 새 성전 헌당예배를 올린다. 예배당, 다목적관 등이 지난 2020년 10월 신축되었지만 코로나19 유행으로 미뤄지다 거리두기 제한이 풀리면서 2년 만에 마련됐다.

이날 예배에서 마산서부교회 이승현 목사의 말씀에 이어 건축 경과보고, 시공을 맡은 이주상 해진종합건설 대표에 감사패, 건축위원장인 김흥주 장로 등에 공로패가 수여된다.

성전 건축은 윤 목사가 부임한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듬해 성전 건축을 교회 비전으로 선포하고 건축위원회를 구성한 것이다. 교인들의 약정 헌금과 주일학교 출신 출향인들의 후원이 이어지면서 5억 원 이상이 모아졌다. 이를 발판으로 2020년 3월 신축에 들어가 7개월 만에 준공을 보게 됐다.

교회탑 아래에는 '사랑의 종'이 있다. 이 종은 1954년 이래 예배시간과 화재 등 비상사태를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종소리는 해창마을까지 울려 퍼진다. 지금은 역사물로서 예배당 입구를 지키고 있다.

'해남군지' 등에 따르면 원진교회의 역사는 19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남의 개신교 복음은 1894년 선교사에 의해 우수영에서 시작됐다. 이후 1902년 우수영교회와 옥천 백호교회가 세워지고 신덕리교회(1905년), 고당리교회(1906년)에 이어 다섯 번째로 원진교회가 설립됐다. 이어 초송리교회(1908년), 맹진리교회(1909년), 해남읍교회(1910년) 등이 차례로 들어섰다.

원진교회는 일제 강점기에 사설학교와 야학을 개설해 계몽사업과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데 앞장섰다. 해방 이후 기장(기독교장로회)인 원진교회와 예장(예수교장로회)인 원진제일교회로 분리된 이후에도 YMCA와 연대해 농민운동과 청년교육 등에 힘썼다.

원진교회에 몸담은 많은 교인이 사회활동에 참여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2017년 작고한 이광교 전 해남YMCA 이사장이다. 고인은 장로로 봉직하며 수세폐지 등 평생 농민운동과 민주화·시민운동 등 지역사회를 위해 몸을 바쳤다.

주일학교 출신으로 해남신문 창간추진위원장과 초대 대표이사를 역임한 김창섭(85) 전 해남YMCA 이사장도 사회활동의 소명 의식은 교회에서 출발했다. 오랫동안 외지에서 살아온 그는 지금 고향으로 돌아와 원진교회 집사로 활동하고 있다.

원진교회는 목포남부교회 부목사로 있던 윤요한 목사가 부임하면서 부흥의 길을 걷고 있다. 부임 당시 30여 명에 그친 출석 교인이 지금은 시무·원로장로 7명을 포함해 100명 정도로 늘었다. 교인들은 주로 원진리 주민들이지만 해남읍 등 인근에서도 출석한다. 농촌 고령화로 교인의 절반 이상이 70세를 넘지만 40~50대의 비교적 젊은층도 많다.

교인 자녀를 중심으로 대학과 고교 입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해외 선교사업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오는 11월 첫 주일에는 처음으로 새생명 전도축제도 계획하고 있다. 신앙이 없는 주민들을 초청해 친교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윤요한 목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새성전 헌당예배를 드리게 돼 기쁘다"면서 "교인을 이끄는 목회가 아닌 함께 가는 목양의 길을 걸으면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축복과 기쁨을 나누는 교회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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