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폭락에 생산비도 못 건질 상황
수확해도 팔 곳도 보관할 곳도 없어
보관창고 확보·추가 시장격리 시급

▲ 지난 13일 삼산면 화내리 채용기 씨 논에서 벼 수확이 진행됐다.
▲ 지난 13일 삼산면 화내리 채용기 씨 논에서 벼 수확이 진행됐다.

"비룟값에 농약대, 기름값, 농기계값, 인건비는 폭등했는데 쌀값만 폭락했다니까, 이러니 농민들이 살것는가."

지난 13일 삼산면 화내리. 논에서 가을걷이를 하고 있는 채용기(74) 씨 얼굴에는 수확의 기쁨은 사라지고 수심만이 가득했다. 수확을 앞두고 지난 태풍 때문에 벼가 쓰러지고 일부 벼에서 병해충 피해까지 겹쳐 풍년을 기대한 만큼 수확량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전남 10대 브랜드쌀로 인기가 높아 가격도 일반 쌀보다 두 배 비싸고 수매가도 20% 가까이 많이 받는 봉황벼(한눈에반한쌀)를 계약재배하고 있지만 다른 쌀값이 너무 많이 떨어지다 보니 걱정이 앞선다.

채 씨는 "모든 농자재값이 두 배 이상 올랐는데 쌀값 폭락으로 올해 한눈에반한쌀 수매가도 지난해보다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쌀 팔아서 대출금, 외상 갚고 생활비 하고 내년 농사 준비해야 하는데 남는 게 없으니 다시 빚지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지역농협들에 따르면 프리미엄쌀을 제외한 일반 쌀의 경우 현재 산지 쌀값(20kg 한 가마)은 4만3000~4만5000원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25% 정도 폭락했다. 농협에서 사들이는 수매가는 지난해 40kg 한 가마에 6만3000~6만5000원 수준이었는데 올해는 5만원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본격적인 수확철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쌀값 폭락도 문제지만 농협마다 재고미가 넘쳐나면서 수확을 해도 팔 데도 보관할 데도 없는 현실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한눈에반한쌀을 계약재배하고 있는 옥천면과 삼산면 농가들은 옥천농협에 자체 미곡처리장과 쌀가공공장 등 판매처가 있어 그나마 수매 걱정은 없지만, 다른 지역 농가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올해 햅쌀 수매를 위해서는 재고미가 쌓여있는 쌀 창고를 비워야 하는데 지역농협의 쌀 보관창고마다 지난해 수매한 재고미로 가득 차 현재 상황으로는 수매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화원농협의 경우 5개 창고에 7만5000 가마, 문내농협은 사일로와 임시 저장창고 등에 11만5000 가마가 가득 차 있는 실정이다. 자체 미곡처리장도 쌀가공공장도 없어 판매처를 찾아야 하는데 쌀값이 폭락해 팔 수도 없다. 문내농협의 경우 지난해 수매가와 현재 쌀값의 차이가 2만원 정도로 시장가로 팔 경우 20억 원의 적자를 보게 되는 상황이다.

화원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이순모(56) 씨는 "농협에서 수매해주지 않으면 농민들이 자체 보관해야 하는데, 대부분이 개인 창고가 없고 소농 위주다 보니 결국 개인정미소 등에 투매를 하게 될 것이고 쌀값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어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귀농 30년째인 문내 한문재(57) 씨는 "농민들이 열심히 농사만 지을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하는데 수확하면서 어디다 팔아야 할지 걱정부터 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며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다른 농민들과 연대해 차라리 수확을 포기하고 논을 갈아엎고 싶은 심정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태가 급해지자 지역농협들은 최근 농협중앙회 측에 쌀 보관창고를 추가로 확보해주고 이에 따른 임대료와 운송비를 지원해 줄 것과 정부 측에는 신속하게 추가로 시장격리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현재 농협중앙회에서 각 농협의 보관창고를 추가로 확보해 올해까지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지만 이 역시 임시방편책에 불과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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