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산사 향사제.
▲ 영산사 향사제.
▲ 용지사 향사제에 참여한 제관들.
▲ 용지사 향사제에 참여한 제관들.

해남향교(전교 장성년)는 지난 4일 마산면 화내리 이영산에 위치한 영산사(英山祠·원장 김영진)에 이어 5일에는 계곡면 사정리 용지마을에 있는 용지사(龍池祠·원장 임창길)에서 향사제를 지냈다.

영산사에는 임진왜란 공신인 이계정(1542∼1596)을 비롯해 이숙형, 이황, 이대행, 이호, 이순, 이원해, 이준, 이성춘 등 원주 이씨 문중 9명의 충신이 배향되어 있다.

해남의 원주 이씨는 이신우를 시조로 하고 있으며, 강릉대도호부사였던 이영화가 단종 때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이를 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경기도 광주에서 이곳 마산면 산막리로 입향하여 강릉공파의 파조가 되었다.

영산사는 1869년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훼되었다가 1901년 복설되었으며, 1974년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총 9종 18점의 소장문서 중 '선조밀부유지' 등이 있어 1988년 3월 전남도의 문화재자료 제159호로 지정됐다.

용지사는 대원군의 명으로 훼철되었다가 1948년 재건립하여 참의 단재(丹齋) 오극신(1554~1597), 아들인 장령 오계적, 조카인 용호 오홍적, 해금(海錦) 오달운 등 4위를 배향하고 있다. 오극신은 임진왜란 때 순절하여 구국의 충신으로 명성을 떨쳤다. 사후 병조참의에 추증되었고 선무원종공신에 훈록되었다.

오극신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아들 오계적, 조카 오홍적과 함께 의병해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명량해전에 출전하다 승리를 앞에 두고 아들과 함께 전사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한 이순신 장군은 "나의 오른팔을 잃었다"며 통곡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해금 오달운은 1740년(영조 16년) 문과에 급제하여 찰방을 지냈다. 벼슬에 나가기보다는 실용 학문 연구에 진력하여 문집 '해금집'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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