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규(진이찬방 식품연구센터장)

 
 

농민은 가족 노동을 기반으로 농산물을 직접 생산하는데 종사함으로써 생계를 영위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또한 생계 활동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농업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농민의 개념이지만 귀촌해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필자에게는 올해가 새삼스럽다. 모든 농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풍작을 이룰 줄 알고 있었는데 강력한 태풍 '힌남노'가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히고 지나가 걱정스럽다. 이렇게 농민들의 마음이 타들어갈 수밖에 없는 현상이 일 년이면 몇 차례씩 일어나곤 한다.

우리나라의 농민들은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농산물 가격구조에서 희생을 강요당하고 살아왔다. 그 사이 농촌의 인구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통계청 2021년 농림어업조사'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농업 가구 수는 103만 가구로 전체 가구 수의 4.4%에 달한다. 농가 인구 수는 221만 명으로 총인구대비 4.3%에 달하며 농민의 50대 이상이 79.2%로 고령화 상태에 있다.

농촌 가구 수와 인구가 줄어들어도 우리나라 먹거리는 결국 농민이 생산해낼 수밖에 없지만 고령화로 인해 그만큼 농사짓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농민들의 주 생산물이 쌀임을 감안하면 생산량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너무 큰 쌀값의 불확실성이 농민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농민은 단순노동자와는 다르다. 토지를 기반으로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노동으로 가계를 유지해나가고 있는 점이 도시노동자와 차이가 있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공산품은 고정자산 사용에 대한 비용을 인정하여 판매가격을 매긴다. 그러나 농산물은 고정자산인 경지면적 사용에 대한 비용계산을 안 하고 당해연도의 생산량과 소비자 물가를 기반으로 한 경제논리로 농산물 가격을 정하기 때문에 매년 변동 폭이 크고 불안정하다.

현대에는 농민도 신분적 예속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영농에 종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지만 아직도 농민은 국가의 정책대상으로만 존재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다 보니 이익집단으로서 조직력도 비교적 약하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외국 농축산물의 수입이라는 큰 도전에 직면했다. 농축산물의 수입 개방은 우루과이라운드로 구체화 되어 미국을 비롯한 농업수출국들의 집요한 압력을 받아야 했다.

해외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경제는 농민의 권익보다는 수출시장 확보를 위해 외국의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젊은이들은 농촌을 떠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농민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작업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와 쌀 등의 주곡을 생산하는 농민들은 기계 작업에 주로 의존하게 되었다. 예전처럼 두레와 같은 공동노동은 농촌에서 자취를 감추고 동네 또래를 기반으로 하는 품앗이만이 명목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다만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민들은 지금도 기계화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 옛날과 같은 환경에서 등이 휘도록 밤낮으로 일하고 항상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도 농민의 마음은 한해 농사가 풍작이 되어 노력한 만큼 제값 받고 팔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예전에는 농사를 아무리 지어도 원하는 소득이 나오지 않아 한 세대가 고향을 떠나 도회지로 옮기는 일이 근 60년 넘게 이어졌지만 최근에는 농업에 대한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귀농하려는 도시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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