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호(북일면 주민자치회장)

 
 

원불교 경전에 불가마에 올려진 솥을 말하는 대목이 있다. 물이 끓는 솥을 식히려고 찬물을 부으면 잠시만 식다가 다시 끓는 일을 우리는 어리석게 반복하면서 살고 있다고. 불을 꺼야 제대로 식는데도 솥만 바라보면서 물을 계속 부은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말이다. 근본을 보지 못하니 어리석은 짓임을 모르는 인생을 산다는 뜻이다.

이해하기 아주 쉬운 경구이지만 사실 우리 인생이 대부분 그렇듯 어리석음의 범벅인 듯하다. 모자람을 채우고 또 채우다가 끝에 다다르는 인생, 근본을 보겠다고 모든 걸 다시 시작하고 또 시작하다가 끝에 다다르는 인생, 그렇게 우리는 답이 없는 길을 걷다가 가는 인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자부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석양의 노을이 멋진 이유는 환하게 대낮처럼 해가 지는 것이 아니라, 밝음이 멈추고 구름이 어우러진 붉음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석양을 대낮처럼 밝게 꾸미려고 끝까지 내려놓지 않은 생을 보여주려는 추함이 많다. 그것은 끝을 모르는 어리석음이 서서히 저물어가는 자연의 이치와 어긋나게 발버둥치는 추함의 극치이다.

인생은 답이 없다. 그래서 아름답다. 답이 있는 삶이라면 매우 싱겁고 지루할 것이다. 답대로만 살면 그만일 터이니 무어 달리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답이 정해졌다면 오래 살 필요도 없다. 이렇게 살까 저렇게 살까 하다가, 이 길 저 길을 찾아 헤매다 끝나는 인생, 그것이 인간이 마주한 고난이고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이다. 사랑은 무엇일까. 누가 감히 사랑은 이것이야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빚어낸 수많은 이야기가 아름답지 않은가. 우리가 다가가는 사랑,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깨달았을 때 이미 그 사랑은 떠나고 없을 수도 있고, 사랑을 찾아 헤매고 있을 때 이미 그 사랑이 옆에 있음을 모를 때도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사랑이고 인생이 아닐까.

점심시간을 보장하라는 노동자 인권의 주장. 당연한 주장이고 옳은 말이다. 그런데 식당 근로자가 점심시간을 보장하라면서 그 점심시간에 일을 안 하면 누가 식당을 운영할까. 당연한 주장도 성립하려면 때와 장소에 어울려야 한다. 당연함 속에 모든 것이 획일적이라면 차이를 무시한 폭력이 아니겠는가.

과정은 보지 않고 결과만 가지고 평가하려는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다. 아니 대부분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인생을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평가를 함으로써 자신의 위상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무지의 행위이다. 일에 동참하지 않고 비판만 하는 사람, 어찌 보면 참 비겁한 사람이다. 누군가 한 일을 말 몇 마디로 잘라서 요리하는 못된 해코지나 다름없다. 무슨 경연대회 심사위원인 양, 몇 마디로 평가하는 심보는 남의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그저 잘난체하는 거드름이다.

답이 없는 길, 그렇기에 가야만 하는 길, 그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누군가는 가야 할 길이라면, 내가 먼저 간 길에 후회는 없을 것이다. 답만 찾지 않고 일을 해결하려고 열심히 지나온 발자국들이 남을 뿐이다. 문제가 발생하기만을 기다렸다가 내 그럴 줄 알았다고 비난만 하는 자들, 치열함은 없고 치사함만이 채워진 자신의 삶을 외면하고 있을 것이다. 해답만을 찾는 자는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낭비하는 자이다. 인생은 답이 없기에 아름답다는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한 번쯤은 고민해보았을까. 앞서서 가는 길, 영웅만이 하는 일이 아니라 인생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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