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97억원 차익 챙긴 해남 9곳 적발
2곳은 부동산 매매만 한 '가짜 농업법인'
7곳은 허위 계획서로 땅 산 뒤 불법차익 
농민은 농지 잃고 치솟은 임대료에 고통

지자체는 불법 농지거래 사실상 방치
농지위 설립해 뒤늦게 투기 차단 나서

 

본업인 농사 대신 땅 투기를 일삼은 농업법인들이 감사원 조사에서 무더기로 적발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농업법인들이 웃돈을 주고 농지를 구입한 후 농사는 짓지 않고 외지인에게 비싸게 되팔면서 차액을 챙겼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정작 농민들이 영농할 수 있는 땅이 줄어들고 땅값 상승에 임대료까지 높아지면서 지역 농민간 농지 임대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특히 농업법인 제도의 취지나 설립 요건에 맞지 않는 농업법인이 무분별하게 설립돼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사례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자치단체는 뒷짐만 지고 있어 감사원에 지적되기도 했다.

1억 이상 차익 전국 476곳 점검

 
 

감사원은 최근 농업법인 관리 및 지원제도 운영실태 감사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감사보고서를 보면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농지 매매로 1억원 이상의 차익을 얻은 전국 농업법인 476곳을 점검했으며 이 중 해남지역 2곳의 농업법인은 부동산 매매업만을 해 각각 59억7000여 만원과 1억2900여 만원의 차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7곳의 농업법인은 허위 농업경영계획서로 농지를 사들인 후 농사를 짓지 않고 외지인 등에게 되팔아 35억8700여 만원의 불법적인 차익을 거둔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적으로 부동산 매매업만 하는 농업법인은 97곳, 허위 농업경영계획서로 농지를 사들인 후 농사를 짓지 않고 매매 차익만 챙긴 농업법인은 137곳으로, 감사원은 자치단체에 이들 농업법인에 대한 해산 청구와 농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통보했다.

농업법인에는 보조금 지원 등을 비롯해 법인세, 취득세, 재산세 감면 등 각종 혜택을 주고 있음에도 이를 악용하며 사업 범위를 벗어나 부동산 매매로 수익을 내는 등 사실상 농업법인으로 위장한 기획부동산이 판을 치면서 농민들은 농사지을 땅을 잃는 사태까지 불거지고 있다.

산이 농민, 임대농 4000평 뺏겨

실제 산이면에서 농사를 짓는 한 농민은 1만여 평의 밭을 임대받아 배추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농지 주인이 이 중 4000여 평을 농업법인에 팔아 임대를 계속해 받지 못하게 되면서 지금은 6000여 평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그동안 임대 농지 농사를 위해 물길을 내거나 전기를 연결하는 등 경영비도 많이 투자된 상황에서 가짜 농업법인의 횡포에 갑자기 농사짓던 땅을 빼앗긴 것이다.

이 농민은 "가짜 농업법인이 투자자나 농지를 구입할 의사가 있는 비농민들을 모집해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농지를 매입하고 투자자나 농지를 구입할 의사가 있는 비농민들에게 땅값에 거품을 붙여 많은 이득을 챙기고 거래가 성사된 농지 대부분을 외지인 비농민들이 소유하게 됐다"며 "3000평 농지를 매입해 300평씩 쪼개 10명의 비농민인 외지인에게 팔다 보니 농지에 대한 관리도 가짜 농업법인이 맡아 우량농지는 직접 농사를 지어 수십만 평의 농지를 경영하고 상대적으로 안 좋은 농지는 더 높은 임대료로 농민들에게 임대하는 병폐가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감사원 조사 결과 해남군 소재 농업회사법인 A유한회사는 농산물의 유통·가공·판매를 비롯해 농작업의 전부 또는 일부 대행으로 사업을 신청해 놓고 부동산 거래로 2018년 49억273만원, 2019년 9억5929만원, 2020년 1억1568만원 등 59억7771만원의 이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유한회사 B농업회사법인은 2018년 3120만원, 2019년 8314만원, 2020년 1543만원 등 최근 3년간 법인세 신고자료 상의 매출 및 수익의 대부분이 부동산 거래에서 발생하고 있어 농업경영을 정상적으로 영위하는 법인으로 보기 어려워 법인을 해산하도록 해남군에 통보했다.

해남군내 위치한 농업회사법인 7곳은 허위 농업경영계획서로 총 76필지 11만5484㎡ 농지를 사들인 후 농사를 짓지 않고 외지인 등에게 비싸게 되파는 방식으로 35억8700여만원의 불법적인 매매 차익을 거둔 것으로 드러났다.

ㄱ농업법인은 3년간 28필지 3만6095㎡ 농지를 15억8192만원에 취득해 30억6498만원에 매도함으로써 14억8305만원의 차액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자세히 살펴보면 2018년 3월 5일 채소를 재배한다며 밭 2116㎡를 7300만원에 매입해 놓고 2018년 5월 18일부터 7월 25일까지 5차례에 거쳐 1억7920만원에 되팔아 1억620만원의 차액을 거뒀다. 또한 같은 해 2월 27일 채소를 재배한다는 명목으로 농지취득자격을 얻어 같은 달 27일 논 5171㎡를 2억33만원에 사들여 이 농지를 분할받은 후 같은해 7월 5일부터 2019년 4월 25일까지 3차례에 나눠 4억8370만원에 팔아 2억8040만원의 불법적인 차액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ㄴ농업법인도 20필지 3만3793㎡ 농지를 13억5903만원에 취득해 25억7692만원에 매도함으로써 12억1788만원의 차액을 거뒀으며, ㄷ농업법인은 9필지(5685㎡)를 거래해 4억1265만원의 차액을, ㄹ농업법인은 5필지(1만1894㎡)를 거래해 2억1828만원, ㅁ농업법인은 10필지(1만9508㎡)를 거래해 1억5266만원을, ㅂ농업법인은 2필지(2643㎡)를 거래해 7930만원을, ㅅ농업법인은 2필지(5866㎡)를 거래해 2330만원의 차액을 불법적으로 거뒀다.

ㄴ농업법인은 영암군 소재 4필지(5162㎡)의 농지를 2억9400만원에 사들여 4억6000만원에 되팔아 1억6600만원의 차액을, ㄹ농업법인도 같은 방식으로 무안군 소재 9필지(1만981㎡)와 신안군 소재 8필지(1만7565㎡)의 농지를 사들였다가 비싸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각각 2억7000여만원과 2억3000여만원의 차액을 거둔 것으로 조사됐다.

허위 농업경영계획서 점검 못해

타 지역에 소재한 농업법인들 역시 해남지역 농지를 웃돈을 주고 사들인 후 외지인에게 비싸게 되파는 방식으로 토지 장사를 한 것으로 나타나 불법 거래된 해남군내 농지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농업법인이 농지를 매입하기 위해서는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해 농지취득자격 증명서를 받아야 하며 자치단체는 농업경영계획서에 허위사실을 기재할 경우 즉시 신청인을 고발해야 하지만 이 같은 점검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부동산업을 하는 D 씨는 "농업법인들은 부동산 매매가 불법임에도 관리·감독해야 할 정부와 자치단체가 사실상 방치하면서 이번 사태를 불러오게 했다"며 "대대적인 수사와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 다시는 불법적으로 농지가 거래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자치단체가 종합적 검토 또는 투기 등 매매거래 목적인지에 대한 심사를 하지 않은 채 서류만 구비될 경우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일부 지역은 담당자의 재량에 따라 발급 여부가 달라지는 등 일관성 없는 발급 심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농업경영체 정비 방안 마련 등을 요구했다.

읍면별 농지위원회 운영 나서

해남군은 목적 외 사업으로 영리를 추구한 2개 농업법인에 대해서는 법인 해산 청구 등의 절차를 이행하고 농업경영계획서에 허위사실을 기재하여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은 7개 농업법인에 대해서는 관련 법에 따라 구체적인 처리계획을 수립해 후속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농지 투기 사태가 불거지자 전남도는 22개 시군에 지역농업인, 농지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농지위원회를 구성해 농지 이용정보 변경 시 농지대장 변경신청을 의무화함으로써 투기를 방지하는 등 농지 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투기 목적의 농지소유를 막고 보다 효율적으로 농지를 관리하기 위해 농지법령이 지난 18일부터 일부개정·시행됨에 따라 해남군도 읍면별로 농지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한다.

군은 농지 취득 민원 처리 기간이 14일인 점을 감안해 월 2회 농지위원회를 운영할 예정이다. 농지소재지 또는 연접한 시군에 거주하지 않으면서 관할 소재지 농지를 최초 취득하려는 자, 1필지의 농지를 3인 이상이 공유 취득하려는 자, 농업법인·외국인·외국국적 동포가 농지를 취득하려는 자에 대해 집중적으로 심사하게 된다.

군은 농지위원회 설치·운영을 통해 농지취득자격증명 심사를 강화하는 한편 농업법인 실태조사를 매년 실시하여 부실 운영 농업법인에 대한 제재도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또한 농지대장 변경사유가 발생하면 60일 이내에 농지 소재지 읍면사무소에 농지대장 변경신청을 해야 한다.

농지대장 변경사유란 농지 소유자나 임차인은 농지 임대차계약을 체결·변경·해제하는 경우와 농지에 수로, 농막, 축사 등 개량·생산시설을 설치하는 경우다. 농지대장 변경 사유가 발생했으나 변경신청을 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신청하면 위반 횟수에 따라 100만 원에서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이번 농지제도 개선 시행에 따라 '농지원부'는 '농지대장'으로 명칭이 바뀌고, 관할 행정청은 농업인 주소지에서 농지 소재지로, 작성 대상은 1000㎡에서 모든 농지로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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