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르신들은 '돈 산다', '쌀 팔아온다'는 말을 흔히 했다. 지금은 일상에서 사라진 표현이지만 당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가 갸우뚱해지곤 했다. 돈으로 물건을 사지, 물건으로 돈을 산다는 자체가 어색하게 다가온 것이다.

'쌀 팔아온다'는 말은 정반대의 표현이어서 더 이상하다. 전영택의 소설 화수분(1925년 발표)에 '어멈이 늘 쌀을 팔러 댕겨서(다녀서) 저 뒤의 쌀가게 마누라를 알지요'라는 문장이 나온다. (집에 쌀이 떨어져 쌀 가게 가는 상황에서)이 문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쌀 가게에 쌀을 팔러 다녔다'는 모순에 부닥치게 된다. 여기서 '쌀 팔러 다닌다'는 '쌀 사러 다닌다'의 뜻으로 쓰였다.

이처럼 뜻이 뒤바뀌어 사용되는 이유를 두고 여러 해석이 있다. 옛날에는 '귀하디 귀한' 쌀이 곧 화폐(돈)와 동등한 대접을 받았다. 그렇다면 '쌀 팔아 돈 산다'거나 '돈 팔아 쌀 산다'는 표현의 어색함이 어느 정도 사라진다. 또 하나는 양반들이 빈 쌀독을 채우려면 쌀을 사야 하는 데 시쳇말로 '쪽팔려서' 거꾸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판다'는 옛말에는 '흥정하다'의 뜻이 포함되어 이게 변했다는 풀이도 있다.

쌀이 우리나라에서 언제 주식으로 자리 잡았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길게 보면 삼국시대부터 1000년 이상 주식의 위상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60년대, 70년대를 겪은 중장년층에겐 10년 가까이 계속된 혼분식의 아련한 추억이 있다. 정부에서 쌀 막걸리를 없애고 잡곡밥이나 밀가루 음식을 장려했다. 식당도 특정 요일(수, 토요일)엔 쌀로 만든 음식을 팔지 못했고, 선생님은 학생들의 도시락을 일일이 검사해 쌀밥을 싸 오면 혼쭐을 냈다. '없던 시대'를 지나온 나이 지긋한 분일수록 쌀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그래서 지금도 쌀로 떡을 만든다거나 튀밥을 튀긴다면 영 마땅찮은 표정을 짓곤 한다.

요즘 쌀은 탄수화물 섭취와 비만의 주범으로 내몰리면서 처량한 신세가 됐다. 우리나라 한 사람이 지난해 연간 소비한 쌀은 30년 전의 절반 수준인 56.9㎏이다. 이를 하루로 환산하면 155.9g이다. 보통 밥 한 공기에 쌀이 100g 들어가니 하루에 한 공기 반을 먹는 셈이다. 지금 산지 쌀값(20㎏ 4만2522원·통계청 기준)으로 치면 고작 330원이다. 주식이라는 쌀에 한 달간 들어간 돈이 고작 커피 두 잔 값(1만원)에 불과하다. 이게 과연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매년 8월 18일은 쌀을 많이 먹고 가치도 알리자며 제정한 '쌀의 날'이다. 2015년에 지정됐으니 올해로 8년째이다. 쌀의 한자인 米(미)를 파자(破字)하면 팔(八), 십(十), 팔(八)이다. 팔과 십, 팔에서 따온 것으로 한 톨의 볍씨(쌀)를 생산하려면 88번의 농부 손길이 필요하다는 의미도 부여했다. '쌀의 날'에 즈음해 여기저기서 쌀 소비 촉진 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런다고 하루에 밥 한 공기 먹던 사람이 두세 공기로 늘리긴 만무하다.

뾰족한 대책이 없다지만, 쌀 생산량을 한시적이나마 줄이거나 남아도는 쌀을 어느 나라가 됐던지 내보내야 한다, '농사가 천하의 큰 근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말은 요즘의 '식량안보'와 맞닿아 있다. 넘치는 재고에 폭락하는 쌀값을 방치하면 언젠가는 식량안보를 무너뜨리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농촌과 농민에게 더이상 희생제물이 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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