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희(목포대 강사·해담은3차아파트 공동체 대표)

 
 

영상에서는 한 여자가 길거리에서 담배꽁초를 줍고 있었다. 그녀는 버려진 담배꽁초가 하나라도 있는 곳은 곧 담배꽁초의 무덤이 된다며 깨진 유리창 이론을 언급했다.

해리 512번지는 골목 안, 허물어진 집터였다. 세월이 흘러 풀이 자라면서 쓰레기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곳에 여러 종류의 꽃을 심었더니 쓰레기가 현저하게 줄었다. 쓰레기에 관해서라면, 깨진 유리창 이론을 극복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계속된 가뭄을 겪으며 기후위기를 실감하게 하는 올해와 같은 날씨에 물을 줄 수 있는 수단이 하나도 없는 해리 512번지에 심은 꽃모종이 무사히 꽃을 피울 수 있던 것은 커다란 고무통에 날마다 물을 받아 놓은 이웃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모종을 기부한 이웃, 새벽길 마다하지 않고 풀 매러 나온 이웃들, 그리고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상식적인 읍사무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여름인데도 열어 놓은 창문으로 이불을 끌어당기게 할 만큼 찬바람이 들어오는 요 며칠은 내심 기후에 대한 염려로 불안하지만 풀매기는 좋은 날이다. 그런데 초여름인데도 지방선거가 있었던 무렵은 엄청 무더웠다. 그런 어느 날, 풀매기를 건너뛰려고 한 어느 날, 새벽에 걸려온 전화 때문에 해리 512번지로 갔다. 이마는 물론 등에도 땀이 흘러내린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풀을 매다가 갑자기 아이가 학교 폭력(이하 학폭) 피해자가 되어 호출되어 학교에 다녀왔다면서 아이가 가해자를 용서하고 마음 편하게 살면 좋겠는데 아이는 처벌을 원한다는 말을 풀 매러 온 사람이 했다. 멀리서 새벽을 달려 풀 매러 온 이유로는 너무나 충분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황광희라는 사람의 직업을 뭐라고 해야 할까. 아이돌 출신 방송인이 적합하겠다. 필자는 그의 매니저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매니저가 함께 출연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왔는데 방송을 보던 시청자가 황광희 매니저가 학폭 가해자였다고 제보를 했다는 기사였다. 그 후 매니저가 교체가 되었는지, 사표를 냈는지 그 다음부터는 나오지 않았다. 그 당시 필자는 '사람은 열 번도 바뀐다는데 어렸을 때 한두 번 실수가 평생 발목을 잡는다면 그는 평생 깡패로만 살아야하는가'라고 가해자에게 관대한 의견을 갖고 있었고 여러 사람들과 토론을 했었다.

그러나 학폭 피해자인 주인공이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웹드라마 '돼지의 왕'은 다른 시각을 갖게 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피해자에게 몰입되어 분노했다.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자지만 때린 사람은 오그리고 잔다는 옛말의 진정성과 의도에 대해서, 그리고 그렇게 세뇌하는 사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건지 사람은 열 번도 더 변한다는 말이 맞는 건지 헷갈린다. 그러나 애초에 참으라고 할 게 아니라 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는 사회여야 한다. 애초에 몰상식한 행위를 해서도 안 되고 그런 행위에 눈을 감거나 관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는 사회였어야 했다. 깨진 유리창을 한 번 더 깨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뇌물수수의 전과가 있는 전직 공무원이 지방선거에서 당선되었다. 또 그 사건에서 자체 징계를 받은 전직 공무원도 군의원이 되었다. 깨진 유리창 의회다.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가 나온 후에 그런 사람을 뽑은 유권자를 탓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필자는 모르겠다. 그게 유권자 탓인지, 그런 경력으로 감히 지방의회 후보로 나선 사람의 탓인지. 아니면 둘 다 문제가 있는 건지. 한여름인데도 오늘 새벽은 더 어둑어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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