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섭(해남군농민회 정책실장)

 
 

가뭄에 목마른 농민, 물 한 바가지 같은 좋은 소식이 없다.

밤새 내려앉은 이슬이 방울방울 동그란 자태로 풀잎마다 영롱하고 순수한 빛으로 맺혀 있다. 이른 새벽, 이슬이 가득한 풀숲을 헤치며 농부는 아침을 맞이한다.

논둑길을 따라 논을 둘러보고 밭둑길을 따라 밭을 둘러보며 농작물의 생육상태를 살피고 오늘 해야 할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계획하는 것으로 초여름 농부의 뜨겁고 긴 하루는 시작된다.

오늘은 들녘에 있는 논에 물도 대주어야 하고 간척지에 있는 논에 웃거름을 주어야 한다. 5월, 해야 할 일들은 많고 몸은 하나라 밤잠마저 설쳐가며 정신없이 보냈다. 신록이 짖어지는 줄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5월 말까지 가뭄이 들 것이라던 기상청 예보와는 다르게 7월에 접어들었는데도 가뭄은 지속되고 있다. 비가 올 거라는 예보가 있어 서둘러 파종해 놓은 콩이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다. 논과 밭의 다른 농작물들도 생육상태가 순조롭지 않다.

간척지 논들은 연일 땡볕이 지속되니 염해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기상이변은 이제는 이변이 아닌 일상이 되었다.

전 세계적인 기상이변, 아직도 진행 중인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식량 생산이 줄어들고 주요 수출국들은 식량 수출을 통제하는 등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 우리나라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이 발효되었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도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도 가입했다. 정부는 RCEP가 발효되면 농업 분야에서 20년 동안 연간 77억 원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했고, 농촌경제연구원은 CPTPP에 가입했을 때 15년간 연평균 4400억 원의 농업생산 감소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이는 식량자급률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우리나라는 우루과이라운드와 WTO 체제 출범, FTA(자유무역협정)로 이어진 수입 개방 물결과 함께 식량자급률이 급진적으로 하락하면서 20%대가 무너졌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1970년 80.5%, 1980년 56%, 1990년 43.1%, 2000년 29.7%, 2010년 27.6%, 2020년 20.2%로 수입 개방 압력에 끝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영국의 유력 시사 주간지(경제지) 이코노미스트 그룹의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식량안보 지수는 세계 32위라고 한다.

이러한 순위는 식량자급률, 생산량 변동성, 빈곤율 등을 종합해서 산정하는데 우리나라는 식량안보 정책에서 0점을 받았다. 말로만 식량안보를 외칠 뿐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정책이 없다는 이야기다.

국민 1인당 농경지 면적이 90평(가로 17.2m, 세로 17.2m) 이하로 무너져 5200만 국민의 식량안보에 빨간불이 깜빡이고 있는 현실을 윤석열 정부는 알고나 있을까?

땡볕 가뭄에 목마른 농부들, 뼈 빠지게 농사지어 외국인 인건비로 다 나가니, 무엇을 위하고 누구를 위해 농사를 짓는지 모르겠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기름값, 폭등한 비료. 농자재. 사룟값, 어찌 감당할꼬! 곤두박질하는 쌀값에 농민들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올 가을 나락 가격을 걱정하는 얼굴마다 근심이 한가득 묻어 있다.

기다리는 비는 오지 않고 밭에 뿌린 씨앗이 말라비틀어지게 바람만 거세게 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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