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의 11개 지역농협뿐 아니라 400개가 넘는 전국 산지농협들이 지난해 사들인 2021년산 벼 수매 물량을 처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농협이 보유한 창고는 볏가마로 가득 차 다른 농산물 유통사업마저 차질을 빚고 있다.

벼 재고 대란은 지난해 과잉생산에서 출발한다고 하지만 정부가 물가안정을 빌미로 쌀값 폭락 사태에 '나몰라라' 하는 데 큰 책임이 있다.

해남에는 11개 농협이 보유하고 있는 벼 재고가 3만5227톤에 달한다. 40㎏들이 88만 포대가 넘는 물량이다. 이 가운데는 옥천, 황산, 화산 등 3개 RPC(미곡종합처리장)가 도정을 위해 보유한 벼도 포함되어 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의 3배 가까이 된다. 벼 재고가 이처럼 쌓이면서 빈 창고가 남아있지 않다. 당장 보리 수매나 양파, 고추 등의 선별작업과 출하를 해야 하나 보관할 창고가 없어 다른 농산물 유통사업마저 타격을 받고 있다.

지역농협의 벼 재고 대란은 쌀값 폭락이 바탕에 깔려있다. 지난해 40㎏당 6만3000~6만4000원에 사들인 벼가 지금은 5만3000원 안팎으로 뚝 떨어졌다. 제비용 2000~3000원을 포함하면 1만2000원 넘게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RPC도 쌀값이 급락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출혈판매에 나서고 있다.

쌀값 폭락은 정부의 안이한 대처에 큰 책임이 있다. 올해 2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27만톤을 시장에서 격리했지만 역공매 방식을 택하면서 오히려 쌀값 하락을 부추겼다. 역경매 방식은 예정가격 아래로 써낸 대상 가운데 낮은 가격을 제시한 순으로 사들이는 것이다. 쌀값 안정을 위한 시장격리가 되레 쌀값 급락이라는 모순으로 이어졌다. 안이한 정부의 대처에 실망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오를 수밖에 없다.

지금 15만톤 규모의 3차 시장격리가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1, 2차와 달리 확정가격으로 매입에 나서야 가격 지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사실 3차 격리 시기도 이미 늦었다. 당장 8월 말이면 신곡이 나온다. 지역농협이 바로 3차 매입에 참여한다고 해도 벼를 옮기는 데 두 달 이상 걸린다. 매번 늑장대처에 나선 정부도 이번만큼은 더 지체해서는 안 된다. 자칫 올 가을 벼 수매가 무산될 우려도 있다. 이럴 경우 농업기반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근본적인 쌀값 안정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양곡관리법을 개정해 시장격리 요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이참에 정부와 국회는 조속한 재고 벼 추가 매입과 자동시장격리제 도입에 나서 쌀 생산 농가와 산지농협의 고통을 어루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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