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진(대통령직속 농특위 분과위원)

 
 

세계는 지금 패권을 유지하려는 측과 현 질서 자체를 흩트리려는 측 간의 대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 기후재난이라고 불리는 이상기후 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확산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작금의 이런 상황은 원자재 공급망을 무너뜨리고 식량 생산과 공급망을 붕괴시키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인플레이션과 굶주림을 인간에게 강요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경기부양책으로 돈이 많이 풀리면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급격한 금리 인상은 일반 국민에게 살아가는 것조차 버겁게 한다. 그럼에도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 그리고 NATO로 묶여있는 유럽은 러시아, 중국과 대립하고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 전쟁은 자원과 식량을 가진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와의 관계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지난해 기준으로 사료를 포함한 한국의 식량자급률(통계청 자료)은 20.2%에 불과하다. 미국은 120.1%, 캐나다 192%, 중국 91.1% 등이다. 우리나라 자급률은 밀 0.5%, 옥수수 0.7%, 두류 7.5%에 그친다. 한국의 경제는 수입 의존도가 높아 원유, 곡물 등 수입 원자재의 가격 상승이 소비자물가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행이 보고서를 통해 밝힌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은 6%를 상회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이후 23년 11개월 만의 최대 상승 폭이다.

전망은 더욱 어둡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 조짐이고, 식량 수출국들은 자국의 식량안보를 위해 밀, 달고기, 설탕, 팜유 등의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식료품 가격은 더욱 상승해 애그플레이션(농산물 가격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 정부는 물가안정을 최우선 정책으로 선정하고 대책을 강구 중이다. 하지만 대부분 원자재와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에서 물가안정을 꾀할 수 있는 정책적 카드는 없다. 세금을 아무리 줄이고 관세를 0%로 낮춘다고 해도 달러 강세와 원화 약세로 인한 수입 물가 상승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성과를 내야 하는 정부의 물가안정 타깃이 한국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로 맞춰지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쌀이다.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7kg으로 하루 지출액이 460원에 불과해 쌀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소비자물가지수(1000 기준) 가운데 쌀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은 5.5이고 외식 커피는 7.2다.(통계청 자료) 단순 계산하면 쌀 구입에 한 달 약 1만3800원, 하루 460원 지출하는 반면 외식 커피에는 한 달 1만8000원, 하루 600원을 쓰고 있다. 80%를 수입해서 식탁에 올리면서도 식량 위기를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최소한 쌀이라도 90% 이상자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관계가 이러함에도 정부는 쌀값을 인위적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수립한 대책마저도 늑장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쌀값은 올해 초보다 10% 이상 하락했다. 그리고 쌀의 원료인 벼 값 하락은 더욱 심각하다. 하지만 생산비는 폭등하고 있다. 경유 면세유는 지난해 600원 하던 것이 1600원을 넘어서고 있다. 비룟값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9.4%나 뛰었고 영농자재비와 사료비도 각각 38.1%, 17.3% 올랐다. 여전히 전남지역 쌀은 농가소득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작목이고 국민의 주식이다. 더 이상 물가안정을 핑계로 쌀값 하락을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소비가 줄어도 쌀은 국민의 주곡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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