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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로연수 앞둔 '해남군 여성 서기관 1호' 서연 기획실장
양동원 기자  |  dwyang9@h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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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6.17  00: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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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미친 공직 36년… "꾀부린 적 한 번 없었다"

새내기 시절 커피 심부름에 "다방 서기보로 발령내라" 항의
당돌해 상급자에 "아니오" 일쑤…한때 힘든 생활로 이어져
여성계장 때 첫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전국에 설립 '보람'
죽어라 일해도 승진 누락땐 회의감도… 성과주의 정착 다행

"그동안 마음의 준비를 해서인지 의외로 담담하네요. 막상 떠나는 자리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해남군 개청 이래 첫 여성 서기관인 서연(59) 기획실장이 이달 말 1년 공로연수에 들어간다. 공무원 신분은 내년 6월까지 유지되지만 36년 몸담았던 공직에서 사실상 떠나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서기관, 행정팀장, 감사팀장 등 해남군의 '여성 1호'의 기록도 갖고 떠난다.

지난 14일 해남군청 북 카페에서 서 실장을 만나 공직자로서 걸어온 길을 물었다.

"공직에 몸담은 뒤 5년쯤 되면서 제 아이디어가 군정에 반영돼 그렇게 뿌듯하고 보람으로 다가올 수 없었어요. 여성계장 당시에는 다른 지자체에서 시행하지 않는 12개 정도의 시책을 펼쳤어요. 다들 저보고 미쳤다고 했어요. 자정이 되어서야 퇴근하니 '서연 밑으로 가지 말라'는 말도 나오고…."

여성계장으로 일할 당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해남에서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생기고 이후 전국에서 속속 설립됐다. 2000년대 후반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노동부 차관 출신인 김송자 의원,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초청해 군민을 대상으로 한 강의도 마련했다. 이메일로 강의 부탁을 하자 두 의원이 선뜻 땅끝 해남까지 내려온 것이다.

공직 초기에는 "당돌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상급자는 "예"라는 말을 듣고 싶지만 "아니오" 하곤 했기 때문이다. 이는 나름 힘든 직장생활로 이어지기도 했다. 여직원이라고 자꾸 커피 심부름을 시키자 "다방 서기보로 발령내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이런 내면의 세계는 아버지(서정식·1990년 작고)에게 물려받았다고 한다. 일제시대 전북대 전신인 이리농림학교(이리는 지금의 익산)를 나온 부친은 생전에 "오늘 하루 정의를 위해 일하는 딸이 되라"는 주문을 자주 했다. 공직과 정계에 몸담은 후 해남축협조합장을 오래 역임한 아버지는 청렴과 강직한 성품으로 여전히 가장 존경하는 분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3년간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주말과 일요일엔 어머니와 함께 부친의 산소를 찾았다. 1993년 해남신문에 실렸던 장문의 '아버지에게 쓴 편지'는 지금도 어머니가 고이 간직하고 있다.

산이면장으로 재직할 땐 어르신에게 "인성이 갖춰진 후배를 육성하시고 편 가르지 마시라. 산이도 변해야 하고 수준 높은 면민이 되시라"는 말을 했다. 이 때문에 북평으로 쫓겨났다(?)고 생각했다. 그 어르신들이 지금은 "씨앗을 뿌리고 갔다"고 칭찬한다. 그게 보람이다. 지역경제계장 때는 남창5일시장 주차장과 비가림 시설을 위해 땅 주인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다들 '땅 주인이 세상을 떠나야 가능하다'고 했으나 결국 설득에 성공했다.

   
 

36년 공직 생활을 꾀부리지 않고 묵묵히 일하고 한 번의 인사 부탁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공직자에게 가장 좋은 소식이자 동기부여는 승진인데, 죽어라 일해도 다른 사람의 명단이 오르는 걸 보면서 조직과 인생에 회의도 많이 느꼈다. 다행히 지금은 분위기가 바뀌었다. 성과주의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 승진 걱정을 안 해도 될 정도로 성과주의가 정착됐다고 여긴다.

그래서 후배 공직자들에게 성실과 정성이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사자성어로 하자면 호시우행(虎視牛行)과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정신은 항상 깨어있으되 약삭빠르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면 나중에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서 실장은 화산에서 태어나 5살 때 해남읍으로 이사했다. 서초·해남여중을 거쳐 전남여고와 전남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9급 행정직으로 1986년 10월 장흥군에서 6개월간 수습을 거쳐 이듬해 4월 장흥읍에 정식 발령을 받고 한 달 만에 해남군으로 전입했다.

39살의 나이에 뒤늦게 결혼해 군 입대를 앞둔 대학생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남편은 7급 공무원으로 근무한 총무처에서 퇴직하고 고시에 매달리다 지금은 줄곧 해오던 개인사업에서 은퇴했다. 14년 넘게 주말부부로 지냈다.

공직을 떠나도 당분간 해남에서 생활하며 못했던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관심이 많은 미국사와 영국사, 해남의 향토자원, 마한 역사에 열중하고 싶다. 평생교육원에 다니고 싶다고도 했다.

오는 28일 이임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공로연수에 들어가는 천만식 해남읍장, 김영희 계곡면장, 박헌열 산이면장도 이날 읍면장 회의를 마지막으로 군을 떠난다.

서 실장은 공직을 떠나도 아침 7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출근하던 습관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성 첫 서기관으로 일한 것에 감사하게 생각할 뿐입니다. 해남군이 발행하는 '땅끝 해남소식' 6월호 2면에 해남여중 시절 사진이 담겨 마지막 선물이 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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