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정(해남군의원)
지난 9일과 10일 해남에서는 의미 있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해남 현산에 깃든 마한소국'이라는 주제로 전남도가 주최한 국제학술대회이다.
현산면 읍호리 선두골(선돌이 있는 골짜기)의 양쪽 산 사면에서 발견된 100여 기의 고분군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찾고, 활용방안을 모색하는 행사이다. 전남도가 주관한 사실에서도 읍호리 고분군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술대회에 참가한 이정호 교수, 권오영 교수, 강봉룡 교수 그리고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다카다 칸타 교수 등 13명의 연구자들이 발표했다. 발표자의 면면을 봐도 읍호리 고분군의 역사적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읍호리 고분군을 포함하는 백포만권의 고대 유물은 역사적으로 많은 가치를 갖는다. 백포만은 현재 현산면 두모리와 송지면 송암리를 잇는, 방조제가 없을 때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으로 송지면 군곡리, 현산면 황산리, 초호리, 읍호리 일원을 이른다. 백포만권에는 군곡리 패총, 현산면 증산리의 조산고분, 황산리 분토유적, 읍호리 고분군, 화산면 안호리·석호리의 고대 유적이 있고, 최근 조사한 읍호리 고인돌군과 고다산성, 백방산성, 읍호리 성지, 일평리의 죽금성지가 있다.
백포만은 한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하여 남해안과 서해안의 변곡점으로 고대 중국와 한반도, 일본열도를 잇는 동아시아 해상교류항이 있던 항구도시였다. 이는 군곡리 패총에서 중국 신나라(8~23년) 때 동전과 외래유물이 다수 출토되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군곡리 패총에서 전복 껍질이 출토되었는데 당시 고대인들이 바다의 성질을 잘 알고 항해술을 생활 속에서 이용할 만큼 해양기술이 발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백포만 인근에서 살았던 고대인은 바다를 이용한 해양세력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 군곡리 패총을 발굴 조사하면서 바다의 기상을 예측하고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제례의식을 하는 성혈과 고대사회에서 최고 권력자만이 상징적으로 지닌 동경(구리 거울)이 발견됐다. 패총의 최상단에 있는 바위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구멍이 성혈이다. 당시 사회에서는 최고 권력자만이 제례의식을 진행할 수 있었는데, 성혈은 군곡리 패총 일원에 당시 최고 권력자가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동경도 왕릉 등에서 볼 수 있는데 군곡리에서 동경이 발견된 것은 백포만 일원이 하나의 나라를 이루었던 지역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황산리 분토유적은 주거지와 분묘가 혼재된 곳으로 13번 국도 도로공사 중 공사 구간만 발굴했음에도 청동기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 유물이 발굴되어 백포만의 고대사를 규명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분토유적은 분토리가 군곡리와 함께 백포만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주며, 국립 나주박물관에는 분토유적지에서 발굴된 옹관, 토기 등을 전시하는 공간이 별도로 있을 정도이다.
지난해 마한권에서는 최대 규모인 100여 기의 읍호리 고분군이 발견됐다. 발굴조사가 모두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백포만권에서 마한과 백제를 잇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고분군이라고 한다.
고분이 많이 분포한 만큼 이 지역에 많은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고분군의 사람들이 어디에 살았는지는 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다만 백포만권의 군곡리 유적, 조산고분, 황산리 분토 유적, 안호리·석호리 유적, 읍호리 고분군을 볼 때 중국의 사서 진서에 '동이마한신미제국'으로 기록된 신미국의 위치가 바로 백포만권이라고 한다. 신미국은 백제 초기까지도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한 나라이다. 해남반도와 백포만권은 마한시기 역사문화의 시작과 끝을 담고 있는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다.
'해남 현산에 깃든 마한소국' 국제학술대회의 열기는 군민들의 참여와 관심으로 가득했다. 주제발표를 한 연구자들도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참여한 것을 오랜만에 본다며 해남군민의 역사의식을 높이 평가했다.
정부는 역사문화권 정비 특별법을 바탕으로 마한역사공원, 마한역사문화센터 설치, 탐방로, 체험관 등 마한문화를 통한 지역발전 및 관광지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주민의 관심과 참여는 우리 지역의 역사문화를 재정비하는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