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은 유권자의 마음을 얻어야 산다. '표'를 먹고 사는 선량은 그래서 대단하다. 의원에게 선수(選數)라는 게 있다. 당선 경력을 이르는데, 군대의 '짬밥'과 엇비슷하다. 경륜을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방의회는 1991년 부활했다. 4년 후 치러진 1995년 두 번째 지방의원 선거는 민선 단체장도 함께 뽑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이다. 1회 당선인의 임기는 국회의원 선거와 2년 터울을 유지하기 위해 3년으로 1년 단축되기도 했다. 그래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오는 7월 1일 민선 8기가 출범하지만 지방의회는 한 치수 높은 9대가 된다.

6·1 지방선거에서 영광군과 경북 안동시에선 9선의 기초의원이 탄생했다. 아홉 차례 지방선거에서 내리 당선돼 '다선 신기록'을 썼다. 이들 2명은 광역의원이나 단체장 등으로 체급을 올릴 만한 데도 한길을 고집해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35년간 지방의원으로 활동하게 되니 일반 직장에서도 이런 장기 근속자를 찾기 힘들다. 지방의원이 타고난 직업인 셈이다. 해남군의회에서는 그동안 4선이 5명 나왔으나 5선 의원은 아직 없다.

국회나 지방의회에서 선수는 경력과 경륜의 잣대로 나름 큰 의미를 갖는다. 민선 1기 광주 북구청장을 거쳐 16,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태홍(2011년 작고) 의원이 국회에 입성한 뒤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이 60인 나에게 소장파라고 하는데 글쎄…." '젊은 애' 취급이 마뜩하지 않은 것이다. 기자 출신으로 한국기자협회장을 역임한 그의 눈에는 다선 의원도 고개를 들어 쳐다볼 정도의 대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실 소장파(少壯派)는 초·재선의 비교적 젊은 의원으로서 개혁 성향의 계파를 이른다. 선수가 주요 잣대이기도 하다. 국회 입성 이전의 경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초·재선은 초등학교로 치자면 1, 2학년 정도로 취급받는 것이다.

6·1 지방선거 직후 민주당 소속 해남군의원 당선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차기 군의회 의장단 구성을 두고 선수 이야기가 나왔다. 지역위원장인 윤재갑 국회의원은 이 자리에서 '전·후반기 의장은 3선이 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3선이 2명인 상황에서 이게 '지명'이나 '지침'으로 알려져 지역사회가 시끄럽다. 윤 의원의 발언이 선수의 중요성을 강조한 원론적인 얘기일 수 있으나, 당선인 입장에서 지침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풀뿌리 지방자치의 보루인 해남군의회가 흔들린다. 군민이 뽑은 당선인은 지방자치를 지키는 소신 있는 목소리를 응당 내야 했다. 침묵에 묻힌 당선인의 자세에 대한 군민의 시선도 고울 수 없다.

의장단을 구성하는 데 선수는 주요 잣대이다. 다만 '감'이 되는 후보가 없다면 초·재선도 돌아봐야 한다. 민주당 중앙당은 최근 광역·기초의회 의장단 선출에 관한 지침을 내려보냈다. '시·도당위원장(광역의원)이나 지역위원장(기초의원) 참관하에 결정된 당론으로 지방의원이 민주적으로 선출하되 타당과의 비정상적인 야합을 없도록 하라'고 했다.

해남 지역위원회의 민주당 당론이 선수인지는 모른다. 다만 무소속 2명을 포함한 11명의 군의원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자율적으로 의장단을 구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해남 군민의 자존심을 지켜준다. 9대 전반기 의장단 후보 등록과 구성 과정에 군민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민주당 지침이나 작금의 과정이 지방의회 독점 구조에 대한 여러 생각을 겹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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