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3일, 토요일이고 날씨는 맑았다. 오전 10시 무렵 TV를 켰을 때 충격으로 할 말을 잃었던 그 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하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아니나 다를까 선배 PD한테 호출이 왔고, 부랴부랴 촬영 장비를 들고 경남 봉하로 향했다. 가까운 정치인들을 정신없이 인터뷰했고, 월요일에 올라와 영상을 편집해 방송을 내보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영정 앞에 놓여 있던 그 담배를 피웠다.

사람이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을 때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을 '섬광기억'이라고 한단다. 미국인들이 9·11 테러의 소식을 접하던 때에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하던데, 내가 그 순간을 기억하는 걸 보면 아마도 나에게 노무현의 죽음은 그런 정도의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지난 23일, 봉하마을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이 열렸다. 올해 추도식 주제는 '나는 깨어있는 강물이다'이다. 정치대립을 해소하고, 노 전 대통령이 바란 소통과 통합의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자는 취지다. 문 전 대통령은 5년 전인 2017년 추도식에 참석해 대통령 임기 동안은 오지 않고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이날 13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5년 전 약속을 지켰다.

문재인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을 보면, 문 정부의 많은 정책은 노무현 정부의 경험과 교훈을 바탕으로 운영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문재인정부는 노무현정부에서 추진하던 것의 일부는 거의 완성했고, 일부는 하다 말았고, 일부는 시작도 못 했으니, 우리는 '노무현의 시대' 중 일부를 체험했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노무현의 시대를 일부나마 체험했던 지난 5년이, 우리에게 긍정적인 집단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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