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가 좀 되는 운전자라면 하나의 기름값만 보면 다른 유종의 가격도 미루어 짐작한다. 예전에 주유소 휘발유값이 ℓ당 1500원이면 경유는 1200~1300원, LPG는 700~800원 정도 될 것으로 여겼다. 이런 기름값 통념은 2000년 이후 단행된 제2차 에너지 세제개편안에 뿌리를 둔다. 휘발유와 경유, LPG(부탄)의 상대가격이 100대 85대 50으로 오랫동안 이어졌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경유가 휘발유를 추월하자 경유 차를 몰지 않는 운전자도 '왜'라는 물음표를 자주 던진다. 이런 역전 현상을 '생전 처음'이라고 하지만 기실 14년 전인 2008년에도 있었던 일이다. 다만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할 뿐이다.

이유에 앞서 해남지역 기름값을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인 오피넷을 기준으로 살펴보자. 이곳에 등록된 41곳의 평균 가격(26일 기준)은 휘발유와 경유가 1993원으로 똑같다. 개별 주유소로 들어가면 동일한 가격이 주류를 이루지만 경유값이 2000원을 넘어선 곳도 많다. 많게는 40원이 더 비싸다. 작년 이맘때 경유값이 1340원 정도이니 1년 사이 650원(48.5%) 정도 오른 셈이다. 2년 전(1070원)보다는 갑절 가까이 뛰었다. 말 그대로 불에 기름 부은 격이다.

경유 차를 모는 운전자들이 배신당한 기분에 빠져들게 한 역전 현상은 왜 벌어질까. 두 가지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세계 3대 산유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했다.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치솟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근데 경유가 유달리 직격탄은 맞고 있는 것은 경유 차가 더 많은 유럽에서 소비하는 경유의 60%가 러시아산이기 때문이다. 침공 이후 유럽과 러시아가 서로 경제제재에 나서면서 경유 수급이 불안해지고 덩달아 국제 경유값이 폭등한 것이다. 국제 시세가 뛰더라도 국내 정유사들이 정제해 파는 경유가 왜 영향을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국내 기름값은 싱가포르에서 거래되는 국제 가격에 맞춘 연동제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싸게 팔 수 없는 제약이 있다. 한편으로는 정유사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데, 더 비싼 값을 받고 수출해 많은 이익을 남긴다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 푸틴 대통령에게 전범 낙인을 찍는 것을 차치하고라도 전 세계 경제 사정을 뒤집어 놓은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그는 지구촌의 공적이 됐다. 우리나라 기름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으니, 푸틴을 향한 원성이 하늘을 찌를 만하다.

또 다른 이유는 유류세 30% 인하가 정률도 이뤄진 탓이다. 유류세는 휘발유에 820원, 경유에는 573원이 붙는데 일률적으로 30%를 내리다 보니 휘발유는 246원, 경유는 172원 떨어졌다. 경유 인하 효과가 74원 낮아 상대적으로 '비싼 경유'에 일조한 셈이다.

휘발유 차량 운전자도 그렇지만 '상식이 깨진' 경유를 사용하는 차량 소유자의 한숨이 늘어난다. 승차감이나 소음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싼 맛'에 경유 차를 구입한 운전자들이 뒤통수를 맞았다는 기분이야 어찌할 수 없다. 이보다는 화물차를 생계 수단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막막하다. 2년 전 기름값이 한 달에 300만 원 정도 들었다면 지금은 2배인 600만 원이 됐으니 말이다. 정부가 얼마 전 경유 유가연동보조금 지급 기준을 ℓ당 1750원으로 100원 낮추면서 초과분의 50%를 지원한다고 하지만 화물차 운전기사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안 오른 게 없다는 데, 이래저래 국민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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