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섭(해남군농민회 정책실장)

 
 

본격적인 농번기에 접어들었다. 트랙터와 이앙기 등 농기계와 트럭들, 그리고 사람들이 어우러져 들녘 곳곳에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마치지 못한 사람들은 지는 해를 붙잡고 싶은 심정이다. 농기계가 제 할 일을 마친 전답은 어느새 푸르게 푸르게 변해가고 있다. 오월의 들녘을 푸르게 만들고 풍성한 가을의 결실을 위해 오늘도 씨앗을 뿌리고 정성을 다해 가꾸는 농민들,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봄 가뭄은 올해 더 심각한 상황이다. 올해 4월에 비가 내리긴 했으나 작년 12월 이후 강수량이 턱없이 부족해 밭작물 생육이 부진하고 농가 소득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모내기가 한창인 요즘 바짝 말라 수분이 없는 논은 물을 잡기가 쉽지 않다. 치솟는 인건비에 허리가 휘고, 기름값이 폭등하면서 면세유가격은 ℓ당 1500원이 넘어섰다. 비룟값, 농약값 등 각종 농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구슬땀을 흘리는 농민들의 얼굴에 패인 주름은 더욱 깊어진다.

지난 16일, 2차 시장격리곡 12만6000톤 입찰이 1차 때보다 40㎏당 3120원 낮은 가격에 낙찰되어 정부가 1, 2차로 나누어 실시한 27만톤 매입이 끝났다.

그럼에도 산지 쌀가격 하락세는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추가 격리를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양곡관리법 제16조 제2항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미곡의 경우 매년 10월 15일까지 가격 안정을 위한 양곡의 매입 또는 판매 계획 등 수급안정대책을 수립하고 공표해야 한다. 농식품부가 제때 대책을 발표하지 않아 2020년 개정된 '양곡관리법'의 개정 취지를 무시하고, 올해 2월에야 격리에 나선데다 찔끔찔끔 나누어 추진한 것이 쌀값 하락이 지속되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산지 쌀가격이 이 상태로 지속된다면 22년산 조곡 가격이 불안하다. 농자재 가격 폭등으로 생산비는 늘어나는데 애써 가꾸고 수확한 나락 가격이 떨어지면 농민들의 부채는 늘어나고 농촌지역의 지역소멸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정부는 15만톤 이상 추가격리를 통해 쌀값 하락이 지속되는 것을 막고 싼지 쌀값을 안정시켜야 한다. 그것이 정부가 할 일이고 위기에 처한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길이라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보름이 지났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농업정책은 시작부터 우려를 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농업 홀대라는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신문 지면에 실리고 있다. 대부분 농민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반응과 함께 분노를 금치 못한다. 농축수산업 피해가 너무 커서 농·축·어민이 반대하는 CPTPP(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 가입신청을 조만간에 하겠다고 하면서 큰 피해가 예상되는 농축수산업에 대한 대책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또한 윤석열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추가경정예산 59조4000억원의 재원 마련을 위해 농업예산 4250억원을 삭감하고 윤 대통령이 직접 지원을 강조했던 비료값 인상분에 대한 국고 지원 비율을 30%에서 10%로 낮춰 국회에 제출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농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가운데 지난 17일 국회 농해수위 추경안심사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예산은 5556억400만원 증액하고 비료값 상승분 국고지원 비율을 10%에서 40%로 높이도록 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농해수위 추경안 심사 결과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