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고 한다. 민주주의가 다수결의 원칙을 최고 덕목으로 삼고, 다수결 결정 방법으로 선거라는 요식행위가 지금으로선 최상의 수단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뽑는 절차인 선거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손을 들거나, 박수로 결정하기도 하지만 주로 투표라는 행위로 이뤄진다. 투표는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공식적인 의사 표현이다. 다만 투표가 곧 선거라고 할 수는 없다.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나 주민투표는 누군가를 뽑는 선거가 아니다.

그런데 6·1 지방선거에서 투표 없는 선거가 곳곳에 널려있다. 무투표 당선이 무더기로 발생한 것이다. 전국적으로 광역 및 기초단체장, 광역 및 기초의원, 교육감 등 모두 4132명을 뽑는다. 이 가운데 12%인 494명은 투표도 하지 않은 채 당선이 확정됐다. 

광주와 전남을 들여다보자. 27명을 뽑는 시·군·구청장 선거에서 명현관 해남군수 후보를 비롯해 김철우 보성군수 후보, 박병규 광주 광산구청장 후보 등 3명이 무혈 입성하게 된다. 광역의원의 경우 광주시의원 20명 중 절반이 넘는 11명, 전남도의원 55명 중 해남 1선거구의 김성일 후보를 포함해 26명에 달한다. 기초의원을 포함하면 68명이 경쟁자 없이 당선이 확정된 것이다.

이는 현행 공직선거법이 후보자가 선거구의 의원 정수를 넘지 않으면 투표 없이 선거일에 당선으로 결정한다고 규정한 때문이다. 물론 선거운동은 금지되고 투표용지도 만들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도 이 규정이 선거비용을 절약한다며 '합헌'이라고 했다지만 어쩐지 마뜩하지 않다. 단독 후보라도 투표를 통해 과반이나 3분의 1 이상 득표를 할 경우 당선자로 결정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이런 탓에 해남 모든 유권자는 4년 만에 돌아온 선거에서 군수를 뽑을 권리를 갖지 못한다. 도의원 1선거구(해남읍·마산·산이·황산·문내·화원)의 유권자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자치는 지역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처리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이다. 그래서 지역 일꾼도 스스로 뽑게 된다. 그런데 해남의 유권자에게 이번만큼은 일부 일꾼을 선택할 기회가 박탈된 셈이다. 어찌 보면 풀뿌리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 요체인 주권자 의사 표시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지방 정치가 뭉개지고,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은 요인은 특정 지역의 일당 독점체제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호남에서 더불어민주당, 영남에서는 국민의힘이 쥐락펴락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 양당은 이른바 텃밭에서 주권자 위에 군림하고 주인 행세를 하는 모양새이다. 

그렇다면 지방 정치의 위기를 오로지 양당의 탓으로만 돌려야 하는 걸까. 아니다. 일당 독점구조를 이어가는 데는 유권자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유권자는 그동안 숱한 선거에서 '묻지마 투표'로 스스로 옭매이게 했다. '선당 후인물(先黨 後人物)'이 되풀이되고 지방 정치도 시나브로 실종된 것이다. 비단 해남, 나아가 호남만은 아니지만 중앙 정치에 예속된 작금의 현실에서는 풀뿌리 지방자치라고 부르는 게 남 부끄럽게 되어 버렸다.

6·1 지방선거가 12일 앞으로 다가오고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이번 선거에 참여하는 유권자는 투표소에서 7개의 용지를 받아든 게 원칙이나 해남의 유권자는 많아야 6개, 일부는 5개만 받는다. 차제에 일당 독점 타파나 선거법 개정 운동에 나서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이 쌓여간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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