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욱(해남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윤석열 정부가 문화번영의 시대를 예고하면서 출범했다. 이전의 정부를 돌이켜 보더라도 문화정책은 항상 부차적인 과제나 문화예술 분야에 한정되는 영역으로 다뤄졌고, 대중의 관심 또한 크게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번 정부도 이런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보면 문화정책의 변화와 혁신의 필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불안 사회의 대두, 전 지구적 당면 과제인 기후위기 문제, 현실로 닥친 지방소멸 위기, 문화적 삶에 대한 욕구 증대와 전환적 삶에 대한 사회적 요구 등은 문화정책이 더이상 이전 방식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사회변화의 흐름과 함께 진화해가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문화정책이 문화예술 분야의 정책이 아닌 삶의 원리이자 운영방식으로서 확대되고 재편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전환적 사고와 정책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에게 문화의 필요성을 이토록 강조한 지도자가 있었던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백범 김구 「나의 소원」 중에서'

익히 보아온 글이기에 새삼스럽지만 1947년에 쓰였다고 믿기 어려운 글이다. 우리에게 문화의 필요성을 소박하고 절실한 울림을 통해 전달해 준 백범의 외침을 현재 시점에서 우리 해남이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로 옮겨 가는 추세이다. 성장과 개발 위주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 가운데 문화는 어떤 사회적 위상과 위치를 가져야 하는지를 문제의식으로 삼고 있다. 예술 중심주의로서의 문화가 대안이라 할 수도 없고 성장 담론의 문화적 버전인 한류와 문화산업론이 대안이 되는 것도 바람직스러운 일은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술 중심주의나 문화산업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문화는 그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높은 문화의 힘'의 진정한 의미에 공감하고 문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문화 해남'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점진적 실천이 필요하며, 지역의 문화 일꾼들이 만들어내는 소통의 통로가 유연하게 작동해야 '관광 해남'으로 갈 기초가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자율과 소통이 아닐까 싶다. 민간에 보다 자율적인 권한을 주어 지역만의 특색을 살리고 군민들과 서로 소통하며 교류하여 문화의 힘(문화환경)을 키워야 한다.

이러한 문화환경이 갖추어질 때 전통문화, 예술, 생활문화, 문화산업, 기술 간의 창조적 융합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문제, 한계를 인식하고 변화를 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언젠가 백범 김구가 바라던 대로 땅끝 해남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자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문화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며 다양한 모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게 곧 문화지수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섣부른 것일까? '같이'의 가치와 힘을 함께 나누며 가는 길, 지역 문화의 꿈을 가지고 문화광장에 모여들 군민의 기대와 마음이 그려진다. 머리를 맞대고 다양한 모색을 하며 함께 변화의 길을 만들어갈 사람들의 모습이 만져지는 듯하다.

더불어 소통하며 공감과 연대의 힘으로 확장해갈 땅끝 문화해남, 문화예술의 향기가 아름답게 피어나길 기대하며 깊은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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