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섭(해남군농민회 정책실장)

 
 

4월도 어느새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상경하는 버스에서 바라보는 농촌 들녘은 여느 때와는 다른 풍경이다. 짙은 안개가 내려앉은 산촌들, 이제 막 피어나는 수줍은 듯한 하얀 꽃잎들, 봄바람에 잠시 날리다가 땅에 떨어지는 하얀 꽃잎들. 달리는 차량들이 일으키는 바람의 소용돌이에 땅에 떨어진 하얀 꽃잎들이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리는 모습을 보며 해가 갈수록 소멸의 나락으로 내몰리는 한국사회의 어두운 농촌 현실이 가슴을 짓누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농업전망 2022' 대회를 통해 올해 농업구입 가격지수는 지난해보다 1.5% 상승하는데 비해 농가판매 가격지수는 5.2% 하락하면서 농업교역 조건지수가 6.6%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결국 올해 농민들은 힘들게 농사지어도 손에 쥐는 것 없이 제자리걸음하거나 오히려 뒷걸음질하게 될 것이란 이야기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농자재와 인건비, 농촌의 고령화와 고질적인 인력 부족이란 삼중고, 사중고에 농가 경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데다 올들어 계속 치솟는 연료비 부담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올해 벼농사 또한 전망이 어둡다. 쌀값 역계절진폭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재 쌀값은 20kg 1포대에 4만8000원대로 떨어진 상황이다. 이대로 간다면 올가을 수확기에는 더욱 큰 폭으로 떨어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 농촌 들녘은 2~3월에 심은 감자며 봄배추, 옥수수, 고추 등 밭작물을 관리하면서 벼농사 준비를 하느라 하루해는 짧기만 하다.

그런데 정부는 불난 집에 기름 들이붓듯 CPTPP(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omprehensive Progressive Trans Pacific Partnership))에 가입하겠다고 하고 농정당국은 산 너머 불구경하듯 손을 놓고 있다.

CPTPP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모태인데 이것을 주도했던 미국은 탈퇴하고 일본을 비롯한 기존 11개 회원국 전원 찬성이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문제는 회원국 전원 찬성을 조건으로 문을 열어주는 의사결정 방식과 한·일 간 껄끄러운 외교 관계가 얽혀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원전 폭발로 방사능 위험도가 높은 일본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을 금지한 한국의 조치로 벌어진 두 나라 간 분쟁 건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계류돼 있다. 일본 쪽에서 한국의 시피티피피 참여를 가로막거나, 적지 않은 대가를 요구할 개연성이 높고, 수산물 문제를 풀어야 한국의 참여에 협조할 수 있다는 뜻을 흘리고 있음에도 4월 중 가입신청을 하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CPTPP는 관세철폐율 96.1%로 개방도 최고 수위다. 정부 보조금, 디지털 통상, 노동, 인권 분야에서도 까다로운 조건을 붙이고 있다고 한다.

국내 곡물 자급률이 역대 최저인 19.3%로 추락했다고 매일경제 신문이 보도했다. 한 국가의 정확한 식량 척도는 곡물 자급률로 따지는 것이 한 국가의 식량의 양을 결정하는 가장 정확한 척도라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물류 공급망 대란과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제 곡물가격이 치솟는 가운데 한국의 곡물 자급률(국내 소비량 대비 생산 비중)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는 것이다. 곡물과 식재료 수급 경로가 속속 차단되고 전 세계적으로 곡물 파동 위기감이 커지자 한국의 식량안보에 비상등이 켜진 것이다.

지난 7일자 매일경제가 유엔식량농업기구(FAO) 곡물 자급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자급률은 2020년 기준 19.3%에 불과해 사상 처음으로 20% 선이 붕괴된 것이다. 자급률 관련 국제 통계가 작성된 2000년만 해도 한국의 자급률은 30.9%였지만 20년 새 11.6%포인트나 추락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곡물 중 80% 이상이 해외에서 수입될 정도로 대외 의존도가 커졌다는 뜻이다.

국민의 생명줄, 농업과 농촌을 지키는 일은 농민만의 몫이 아니다. 온 국민이 함께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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