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잇값'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공자의 제자들이 쓴 논어에는 72년을 살다간 스승의 삶에서 매긴 나잇값이 나온다. 15세 지학(志學·배움에 뜻을 둠), 30세 이립(而立·자립), 40세 불혹(不惑·미혹됨이 없음), 50세 지천명(知天命·하늘의 뜻을 앎), 60세 이순(耳順·이치에 통달하고 듣는 대로 이해함), 70세 종심(從心·마음대로 해도 도에 어긋남이 없음)이 그것이다. 2500년이 흐른 지금도 나잇값을 이를 때 곧잘 인용된다.

공자가 말하는 나잇값이 아니더라도 나이를 이르는 한자는 숱하게 많다. 20살 전후의 약관(弱冠·남자)과 방년(芳年·여자)을 비롯 61살의 환갑(還甲), 62세 진갑(進甲), 70세 고희(古稀), 77세 희수(喜壽), 88세 미수(米壽), 91세 망백(望百), 99세 백수(白壽) 등 헤아리기도 힘들다.

이런 나이의 기준은 모두 한국식이다. 우리는 실생활과 법적으로 서로 다른, 적어도 2개 이상의 '고무줄 나이'를 갖고 살아간다. '세는 나이'와 '만 나이', '연 나이'가 그것이다. 여기에다 실제 생년이 호적과 다르면 하나가 추가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통용되는 게 한국식의 '세는 나이'이다. 굳이 '한국식'이라는 표현을 하는 데는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이런 나이 셈법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한국식 나이는 태어나자마자 한 살을 먹고 해가 바뀌면 한 살씩 늘어난다. 태아를 인격체로 존중한다는 사상, '0'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라는 등 해석도 다양하다. 이런 셈법으로 12월 31일생은 하루만 지나도 두 살이 된다. 그래도 하루라도 한 살의 시절이 있다. 예전엔 태어나자마자 한 살은 건너뛰고 곧바로 두 살이 된 경우도 아주 흔했다. 음력 12월에 태어나고 이를 그대로 (양력으로 이듬해 보통 1~2월)호적에 올리면 '억울하게도' 내 인생에서 한 살 시대는 없어진다.

'만 나이'는 우리나라도 법적으로 정한 나이이다. 태어나면 0살이고 1년이 흐른, 즉 돌이 되어야 한 살이 된다. 생일이 지나지 않으면 한국식 나이에서 2를 빼야 한다. 환갑은 61살에 맞이하지만 '만 나이'로 60세 첫날이다. '만 나이'가 정착되면 환갑을 제외하고 고희연이나 미수연 등은 예전보다 1년 늦게 치러야 한다.

한국식 나이와 만 나이가 섞인 '연 나이'도 있다. 태어나면 0살이지만 해가 바뀌면 한 살씩 먹어가는 나이 셈법이다. 청소년보호법(술·담배 구입)이나 병역법(징병검사) 등에서 사용된다. 언론에서도 생일을 꼬치꼬치 물어보기 어려워 편의상 이를 사용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내년 초 법적, 사회적 나이를 '만 나이'로 통일하겠다고 밝혔다. 이러면 대부분 국민은 두 살 어려진다. 지금의 나이 셈법은 분명 문제가 많다. 문제점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에서는 문화이고 전통이라고 한다. 그것도 장유유서(長幼有序) 문화라고 한다. 제 나이를 갖는 게 장유유서에 더 합당한데도 말이다.

한국식 나이의 뿌리에는 '나이가 곧 서열'이라는 의식이 박혀있다. 우리 속담에 '상놈은 나이가 벼슬'이라는 게 있다. 이 말은 '상놈'은 신분, 재산, 학식 등에서 내세울 게 없어 '그들끼리' 나이로 서열을 매겼기 때문에 생겨났다. 지금도 말싸움에 밀리면 막판에 나온 반격이 '너 몇 살이냐'이다. '형님, 아우' 문화가 버티면서 나이로 장난을 많이 한다. 이참에 나이가 벼슬이라는 생각도 떨쳐내야 한다. 다만 나잇값을 하면 벼슬로 대접하자. 나잇값의 잣대는 욕심을 버리고 더 배려하며 베풀고, 더 경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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