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주량의 기준을 소주로 삼는다. '맥주 ○병', '막걸리 ○병'이라고 하지 않는다. 가장 친숙하고, 그래서 국민주이자 서민주인 '소주 ○병'이라고 해야 주량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가끔 두주불사(斗酒不辭)도 등장한다. 말술도 사양하지 않는다는, 주량이 아주 많다는 뜻이다. 말술을 소주로 치자면 어마어마하다. 한 말은 10되(18리터), 곧 100홉이다. 유방의 부하 번쾌에 얽힌 중국 고사성어인 '두주불사'에 나오는 술이 소주는 아니지만, 굳이 소주로 환산하면 2홉들이(360ml) 50병을 마신다는 얘기가 된다.

즐겨 마시는 희석식 소주는 알코올 95%의 원액(주정)에 물과 감미료 등을 섞어 만든 데 알고 보면 세금 덩어리이다. 세금을 마시는 셈이다. 소주 공장 출고가는 얼마 전 85.4원(7.9%) 올라 1166.6원이다. 여기에는 주세(세전 출고가의 30%)와 교육세(주세의 30%), 부가세(10%) 등이 절반 이상 차지한다. 서민주에 무슨 세금이 이토록 많이 붙으며, 술 마시는 데 웬 교육세가 따라오는지 도통 모를 일이다.

여기서 세금 이야기를 한번 해본다. 2022년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보해양조가 위치한 장성을 권역으로 하는 북광주세무서는 지난해 1년간 2124억 원의 주세를 거둬들였다. (교육세와 부가세를 더하면 술에 매겨진 세금을 훨씬 많다.) 이는 해남세무서(해남, 완도, 진도, 강진, 장흥 권역)의 전체 세수(1553억 원)보다 600억 원 가까이 많다. 보해소주가 대부분 광주와 전남에서 소비되는 점을 감안하면 지역 애주가들이 토해내는 세금이 해남 등 5개 군민이 부담하는 국세를 훨씬 웃돈다는 계산이 나온다. 내달부터 인하 폭을 30%로 확대한다는 유류세도 주세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휘발유에 붙는 유류세는 교통세(에너지·환경세 포함), 교육세(교통세의 15%), 부가세와 주행세(지방세) 등을 포함하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정유공장이 있는 여수세무서(여수 권역)의 작년 세수는 5조7537억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교통세 4조1708억 원, 교육세 6516억 원에 부가세를 포함해 기름에 매겨지는 세금만 5조원이 넘는다. 여수세무서는 광주와 전남북 15개 세무서를 둔 광주국세청 전체 세수(16조863억 원)의 35.8%를 차지한다. 그래서 차를 몬다는 것은 세금을 길바닥에 쏟아붓고 다닌다는 말과 같다.

다시 소주 이야기로 돌아간다. 해남의 편의점에서 파는 소주(360ml) 가격은 1950원이다. 보해 잎새주와 하이트진로 참이슬이 각각 230원, 150원 올라 판매가를 맞췄다. 대부분 편의점에는 공장 출고가(1166.6원)로 들어오니 한 병 팔면 780원 정도 남는 장사이다. 7~8년 전쯤 보해양조 사장은 "소주 한 병 팔아야 기껏 100원 남짓 남는다"고 했다. 유통마진이 무섭기는 하다.

음식점은 도매상을 통해 1600원 정도에 소주를 들여온다. 식당에 가면 이의 3배 정도인 4500원, 5000원이라는 소주 메뉴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 병은 소주잔으로 7개 정도 나온다. 한 잔마다 700원 안팎을 내고 마신다는 계산이다. 양으로만 따진다면 맥주보다 2배 비싸다.

그렇다면 60년 가까이 '서민의 술'로 대접받은 자리도 반납해야 할 듯 싶다. 사실 소주처럼 맛없는 술도 찾기 어렵다. 돈 없는 서민들이 단지 싼 맛에, 팍팍한 세상살이처럼 쓴맛에 빨리 취하고 현실을 잊으려는 수단으로 즐겨 찾았다. 애주가들은 안줏값보다 술값에 유난히 민감하다. 그래서 이젠 서민의 술에서 소주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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