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순(커커필드-학교해남 대표)

 
 

필자는 두륜산과 달마산 사이에 자리한 마을의 한 빈집으로 이주한 지 1년이 되어 간다. 우연과 행운으로 만난 이곳에서 사계절을 지냈다. 아침 새소리에 깨고 주변의 논·밭작물을 배우고 동네 마실 다니며 참 행복하다. 가장 먼저 생겨난 곳부터 추가된 집안 공간을 보며 옛 주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빈집. 빈집은 타의든 자의든 '방치'의 결과로 나타난다. 전국의 88%의 빈집이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 분포한다고 한다. 그중 해남의 빈집 수는 열 집 중 세 집에 이른다. 이도 3년 전인 2019년도 통계다. 인구 유출, 일자리와 복지, 고령화와 맞물려있는 빈집 현상을 이해하고 막으려는 노력은 너무나도 절실하다. 해남은 전형적인 농촌형 빈집의 예로 거주하던 고령의 주민이 사망하거나 요양 또는 이주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현재 해남의 거주민 연령대를 본다면 모든 집은 미래의 빈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무도 살지 않는 마을' 현상까지도 갈 수 있을 것이다.

빈집의 속사정은 이렇다. 준비할 시간 없이 집주인이 사라지는 오늘날의 '빈집'은 해결되지 못한 유산 상속과정에서 자녀들에 의해 방치되거나 정리에 성공했다 해도 수십 년 뒤 은퇴 이후의 삶의 밑그림으로 활용하기 위해 방치되기 시작한다. 10여 년 후 마을에 넘치는 빈집 속에서 살게 될 것이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 채 말이다.

나고 자라며 희로애락을 함께 한 이웃은 방치되는 빈집이 생길 때마다 벗을 잃은 우울감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와 사후에 마을이 사라질 수 있다는 막연한 무력감으로도 힘들다고 한다. 타지에서 바쁘게 사는 자녀들과 살아생전 집의 향방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터부시되어왔다. 오늘도 여전히 '행복'을 위해 바쁘게 일하는데 잘살아내고 잘 죽는 방법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해 볼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그 '행복'은 언제 오는 것이던가? 매일 '오늘'을 희생해서 얻으려는 그 '행복'. 일주일 후면 오는가? 한 달, 아니 일 년? 더는 미루지 말고 오늘 행복한 건 어떨까? 고령의 인구가 대부분인 해남에서 '잘 살고, 잘 죽을 권리'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보고 방법을 찾아 서로 권유하고 응원하는 것은 어떨까? 간절한 부분이다.

'애쓰고 뻗치게 살아온 나' 스스로 삶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것이 나의 삶과 함께한 '집'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미래의 빈집'이 아닌 '누군가의 생명력이 넘치는 집'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13개 면에서 해남읍으로의 이주현상도 빈집 확산에 한몫한다. 행정, 교육, 문화가 읍으로 집중되며 일어나는 당연한 결과다. 아파트가 늘어날수록 13개 면 단위의 빈집은 늘어간다. 해남군의 현상은 대한민국의 수도권 집중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제2의 인생을 위해 지역에서의 삶을 실천하려고 청년들이 빈집을 찾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이주민이 사용 가능한 빈집은 드물다. 낯선 배경과 다른 생활구조의 이들이 들어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외지에 사는 집주인의 관리 번거로움의 이유로. 물론 마을 분위기에 따라 확연히 다르다.

관리받는 빈집도 있다. 어릴 적 추억,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자연과의 조우, 도시의 피로함을 치유하기 위해 자주 머무르려고 노력하며 좀 더 애착을 가질 수도 있다.

미래 이주민들은 빈집을 활용하는데 어려워 말자, 같은 비용이면 새집을 짓는 대신 적극적으로 빈집을 활용해 해남의 역사와 공간과 전통을 배우고 환경까지도 지켜내보자. 치료가 필요한 빈집을 위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재료를 고르자. 반면, 너무 나이가 많아 힘들어하는 빈집은 자연으로 잘 돌려보내 주자. 현재의 빈집을 어떻게 사용하고 싶은지에 대한 방법까지 고민해봄으로써 빈집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모든 미래의 빈집 소유자뿐만 아니라 미래 이주민에게도 진심을 담아 이 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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