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렬(빅또르악단 단장)

 
 

1996년 겨울, 피아니스트이자 음악학교 선생이었던 '안나'는 광주시 한 '피아노아카데미'의 강사로 초빙되어 광주에 머물렀고 우리는 어느 서점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녀의 동료로 모스크바에서 온 '타냐', '케이트'와 함께 만났다.

소련 해체 이후 경제적인 사정이 좋지 않았던 그들은 먼 극동의 한 도시까지 피아노 강사로 일하러 온 것이었다. 그들과 나는 좋은 친구였으며, 우리는 자주 어울렸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원했지만 만나지는 못했다.

3주 전 갑작스런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오래된 기억을 소환했다. 모스크바의 멋쟁이 피아니스트 '타냐'와 나이가 나와 비슷해서 더 정겨웠던 '케이트', 그리고 엄마 같던 키이우의 '안나'.

푸틴의 '러시아 침략군'이 우크라이나 변방 도시와 수도 키이우에 대한 무차별 공습을 강화하면서 나의 걱정은 더 커져 갔다. 70살이 넘은 나이에 어느 지하 방공호에서 숨어 지내고 있을 안나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해졌다. 또한 그녀의 딸은 우크라이나 어느 도시에서 지금의 비극적인 전쟁에 맞서고 있을 것인가?

우크라이나 제 2의 도시로 러시아와 국경이 맞닿은 하르키우는 푸틴 러시아군의 무차별 공습과 공수부대의 진입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심지어 러시아군은 산부인과 병원과 아동병원도 정밀 타격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고 있다. 거리에 시체가 뒹굴고 이를 치우지도 못하고 있다는 소식은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푸틴의 '러시아 제국'은 21세기를 또 다시 광기와 야욕이 득실대는 '야만의 시대'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안나는 흑해 연안의 항구도시 '오데사(Odessa)'를 사랑했다.

나에게도 우크라이나에 오면 꼭 오데사를 방문해보라고 여러 번 권유했다. 흑해의 진주로 불리는 '예술과 문화'의 항구도시이다.

나는 젊은 날에 한 번은 폴란드 쪽에서, 한 번은 리투아니아 쪽에서 오데사를 가보려 했지만 번번이 포기했다. 그 아쉬움을 기차 안에서 시로 적어 남기기도 했다.

현재 오데사는 푸틴의 러시아군에 포위되어 있고, 러시아군은 무지막지한 공습을 가하며 진공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오데사는 푸틴의 손아귀에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오데사에 가지 못할 것이다.

푸틴은 흑해 연안을 점령하여 과거 소련 제국을 재건하려 하고 있다.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의 땅끝'으로 불렸다. 한때는 몽골계의 '크림한국'이 있던 땅이다. 이제는 모두 푸틴의 '러시아제국'이 될 것인가?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우크라이나에는 다음과 같은 전통시가 전해져 온다.

'우리의 땅에 천국의 별들만 떨어지기를 바란다/모든 어린 아이같이 순수하길 바란다/비, 꽃, 산을 사랑하길 바란다/매일 달까지 날길 바란다/여자들을 안아주길 바란다/병이 없고 전쟁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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