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년(해남향교 전교)

 
 

동방의 해 뜨는 나라, 고요한 아침의 나라인 우리나라는 수천 년 전부터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렸다. 스스로 불렀던 게 아니고 세계인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그렇게 부르게 됐던 것이 확실하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그렇게 추앙을 받던 우리나라가 서구 문명을 분별없이 받아들이면서 미풍양속의 문화가 시나브로 무너지더니 급기야는 세계에서 가장 예절을 안 지킨다는 '무례지국'으로 전락하는 패륜의 문턱까지 왔으니 '강 건너 불'처럼 뒷짐만 지고 있을 것인가.

필자는 지난 3일 해남향교 제51대 전교로 취임했다.

향교는 각급 기관단체 중에서 노인회와 더불어 고령층의 집단이고 저 또한 팔순의 원로이기에 마지막 봉사 기회라고 생각한다. 나이를 떠나서 젖 먹던 힘까지 보태 한 몸 분골쇄신의 자세로 군민을 위해 몸 바칠 각오를 하고 있다.

향교라는 단체는 성균관의 예하 소속 단체로 1298년(고려 충렬왕 24년) 국자감으로부터 시작해 수 차례 명칭이 바뀌다가 1308년 충선왕이 즉위하면서 성균관으로 개칭해 오늘에 이르렀다.

해남향교의 연혁을 살펴보면 충렬왕 때 안향(安珦)이 송나라 사신을 해남 백포만에서 영접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로 이 지역에 향교를 설립하였고, 이후 고려 송양현이던 지금의 현산면에, 다시 해남읍 고도지리에 이어 구교리, 그리고 1739년에 수성리로 옮겨와 지금에 이르고 있다.

향교는 조선조 후기까지 국가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담당해오다가 조선 후기 교육 전문기관인 학교가 향교에서 분리해 나감으로써 그 기능을 상실하고 유교문화 이념을 구현하는 기구로 변화돼 전국 향교가 노인집단 단체로 크게 변한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해남향교는 꾸준히 정진해 2006년 이후 시범향교로 두 차례나 선정돼 국·지방비 보조금 6000만원을 지원받은 바 있다. 또 1999년 해남향교 삼호학당이 설립돼 유교문화 창달은 물론 전통문화 전수전래, 시대 조류에 걸맞은 강좌를 개설하고 지역사회 봉사를 하며 재능기부에도 앞장서고 있다. 특히 전국에서 유명한 학당으로 자리 잡고 있어 전국 순회 강사진도 삼호학당 강단에 서고 싶어한다.

그리고 미풍양속으로 이어온 작명례와 성년례를 2006년 이래 한 해도 거르지 않는 향교는 오직 우리 향교뿐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작년에는 전라남도 예사회와 해남향교가 공동으로 주관하여 해남군청 직원 20명을 대상으로 성년례를 성공적으로 치르기도 했다.

필자는 선배들이 이룩해놓은 업적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운영할 각오이다.

뜻있는 군민들이 우리 향교에 관심 갖고 입문해 주신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힘을 얻어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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