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혁승(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선거철마다 겪는 일이지만, 이번 대선에는 유독 흑색선동이 난무했다. 비호감 대선이 된 이유가 주요 후보들의 캐릭터에서 기인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각 진영들이 선거전략 차원에서 흑색선동 프레임을 과도하게 사용한 측면이 매우 컸다. 왜 이러한 흑색선동이 난무할까?

우리의 뇌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에 능한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사건이나 대상에 대해 꼼꼼히 따져보고 진실에 다가가려 노력하기보다는 주변에 흘러다니는 파편적 정보나 소문을 근거로 빠르게 판단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냉철하게 따지면서 진실에 접근하려면 그만큼 뇌가 많은 인지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최소 노력의 법칙'을 따라 작동하기에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서 노벨경제학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은 우리의 뇌를 가리켜 '게으른 뇌'라고 말한다.

우리 인간이 선입견이나 편견에 빠지기 쉬운 이유도, 가짜 뉴스에 휘둘리기 쉬운 이유도 바로 게으른 뇌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어떤 사안을 두고 '개인적으로 신경 쓸 일도 많은데 굳이 이것까지 꼼꼼하게 신경 써야 하나?'라는 것이 게으른 뇌의 일반적 반응 양식이다. 그 사안이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수록 그렇게 반응하기 쉽다. 정치꾼들은 이 틈을 흑색선동 프레임으로 파고든다. 가짜 뉴스와 흑색선동이 먹힐 수 있는 인지공간이 게으른 뇌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인물 중에서 소크라테스는 바로 그러한 흑색선동 프레임의 희생자였다. 그는 친구이자 추종자였던 카이레폰이 델포이 신탁에서 받은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없다"는 말에 스스로 동의할 수 없어서 그에 대한 반증을 찾아 나선다. 당시 가장 지혜로울 것으로 보였던 정치가들, 시인들, 장인(匠人)들을 만나 질문식 대화법을 통해 정작 중요한 진·선·미에 대해 아는지 확인했지만, 그들은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들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점에서는 그들과 다르지 않지만 자신이 모른다고 착각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즉 '무지(無知)에 대한 지(知)'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보다 지혜롭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 이후부터 그는 광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끈질긴 질문식 대화를 통해 욕망과 쾌락을 쫓는 그들의 실상을 드러내고, 진·선·미와 같은 가치 있는 것들을 추구할 것을 촉구하는 데 전념한다.

소크라테스 때문에 무지의 민낯이 드러난 당시 정치인, 시인, 장인들은 소크라테스를 음해하기 시작했고, 아테네 시민들은 그런 흑색선동 프레임에 영향을 받는다. 기원전 5세기 대제국 페르시아와의 세 차례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황금기를 구가했던 아테네 시민들은 욕망과 쾌락을 쫓던 자신들의 민낯까지 서슴지 않고 드러냈던 소크라테스를 평소 불편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던 기원전 399년은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 패배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해로 페르시아 대제국을 물리친 아테네 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이 처참하게 무너진 상태였기 때문에 대중들의 좌절감과 분노를 불쏘시개로 한 정치적 음해가 더욱 더 잘 먹힐 수 있었다.

젊은 멜레투스와 그를 뒤에서 조종한 정치인 아니토스와 니콘은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타락시켜왔다는 점과 그리스인들이 믿는 신을 믿지 않는다는 가짜 죄명으로 소크라테스를 고발하여 그를 아테네 법정에 세웠다. 당시 아테네 법정은 재판관이 없고 500명으로 구성된 배심원의 투표로 판결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증거법정주의가 적용되기보다는 정치적 선동 프레임이 먹힐 수 있는 장(場)이었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흑색선동 프레임은 오래 전부터 배심원들의 선입견으로 자리잡아 왔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의 짧은 변론 시간을 통해 자신에게 덧씌워진 음해 프레임을 벗겨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유·무죄 판결 결과는 280:220. 소크라테스는 결국 정치적 흑색선동 프레임에 희생되었다.

정치적 흑색선동 프레임이 난무한 이번 대선은 민주주의 성숙 측면에서 우리에게 큰 과제를 남겼다. 무엇보다도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의 실체적 면모를 보지 못하게 하는 정보의 비대칭 문제가 심각함을 다시금 확인해주었다. 흑색선동 프레임이 발붙일 수 없도록 투명하고 책임 있는 정보 유통 구조를 만들고, 그 위에서 다양한 정책적 비전들이 경쟁할 수 있는 정치판을 만들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대중선동정치로 추락하게 된다. 개인의 신념이나 편향적 판단이 유유상종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증폭되고, 그렇게 강화된 신념이 특정 사안의 진실 여부를 가리는 탈진실의 시대에는 그 위험성이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유권자들은 한편으로 진실을 밝혀야 할 언론기관과 사정기관들이 정보를 컨트롤하며 집단 권력화하는 행태를 저지할 개혁방안을 찾아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판단을 할 때 게으른 뇌를 일깨워 꼬치꼬치 진실을 따져 물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소크라테스가 숨쉬고 활동할 공간이 넓을수록 대중의 욕망과 분노를 자극하고 조직화해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정치꾼들이 설 자리를 잃고, 공공선을 추구하는 정치가들이 배출될 공간이 확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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