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호(북일면 주민자치회장)

 
 

어느 해질 무렵, 붉게 물들어가는, 아스라이 수평선이 보이는 바닷가 고개마루에 앉아 사랑을 고백하려 하지만 망설여지는 수많은 이야기. 아직도 전하지 못한 조그마한 몇 마디를 걱정하려니 마음이 흩어지려고 우왕좌왕하는데, 님은 아무 말 없이 입술을 포개고 온다. 아직도 나에게는 그의 사랑 고백보다 그 입술의 추억에 데인 자국이 더 뜨겁다. 첫사랑은 그렇게 평생 각인된다.

오늘 누군가 절망이 쌓여 병이 깊어져 아무도 다가와 주지 않는 세상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춰도, '미래 열차'는 내일의 운행을 정지하지 않는다.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아도 '나'는 뭐하냐고 기도하며, '우리' 속에 숨고 싶은 나는 조용히 완행열차를 기다린다. 누구와 대화를 하지 않아도 그렇게 삶은 이어지고 끊어진다. 조용한 살인 무기로 돌변하는 댓글, 뜨거운 삶의 용기로 나를 추월하는 격려의 말씀. 세상은 말의 용광로일 수 있지만, 사실 내가 짊어진 삶의 온도보다는 차갑다.서양 철학을 개화했다는 소크라테스의 철학 행위는 '대화'였다. 그것이 철학의 시작이자 끝이다. 우리 시대의 소통. 계층 간, 세대 간, 정치 지형 간, 가족 간, 작은 구조부터 큰 구조까지 소통이 막혀 있다고 아우성이다. 철학이 숨을 못 쉬고 있다는 말이다.

"언어는 존재를 포착할 수 없다"(하이데거)는 말이 있다. 인생은 답이 없기에 아름답다는 역설을 알면서도 우리는 자꾸만 혼자가 되려는 순간이 있다. 나의 심연에 숨은 괴로움은 나도 모르는 이유가 많다. 언어를 구체화해도 잡히지 않는 삶의 현실, 그것이 실존의 현장이다.

언어를 통한 인간의 삶에 대한 표현은 난해할 수도 있으나 본디 따뜻한 차 한 잔이다. 두서없이 올리는 SNS의 글들은 본래 자기를 포장한 자들의 광고판이다. 광고가 끝나고 '나'만을 걱정한다면 철학은 무용지물.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로 끝난다고 믿는 존재들에게 철학은 성가시다. '너'가 있기에 사랑이 시작되고, '너'가 있음에 철학이 시작된다. 사랑의 정의를 모른다고 사랑이 사라지지 않듯, 철학의 정의를 모른다고 철학의 행위가 멈추지 않는다. 철학은 고독한 나그네의 외로운 행동이 아니라 너의 존재를 이해하는 따뜻한 가슴이다.

마음의 절망은 나누어지지 않는다. 나누어진다면 그건 슬픔이 아니다. 언어에 포획된 절망은 슬픔이 아니다. 언어에 포획된 존재는 존재가 아니다. 전쟁도 폭력도 언어 놀음으로 미화하는 세상에서 정신 차리기란 쉬우면서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권력놀음만 지향하는 정치가 언어에 포획된 슬픈 세상에서 '나'조차도 이름 모를 언어에 포획되어 정처를 모르고 세상을 떠돌고 있다면 가슴을 열고 철학을 위하여 잠시 멈추길 바란다. 그것이 조금은 아름다운 삶이 되리라.

작은 사람은 산에 숨고, 큰 사람은 사람 속에 숨는다. 귀찮다고 혼자되려는 마음을 누르는 가슴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따뜻한 나그네이다. 내 비록 가진 것 없어도 초라하지 않음은 소유를 넘은 철학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서로 돕고 배려하는 시간이 우주여행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첫사랑을 늙어서 다시 보지 않음은 청춘의 아름다움으로 살아왔기에 그렇다. 내가 굳이 늙었음을 타인의 쭈글거리는 외모로 위안 삼으려는 마음은 폐허가 된 가슴이다.

나보다 먼저 간 아들이 그리워지는 시간에 철학을 붙들고 가슴을 열라고 하는 '나', 너는 누구인가. 그대 가슴에 따뜻한 햇살이 비추길 빈다. 오늘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를 우리 속에 숨기는 바보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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