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불교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면서 중학 시절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에 뚜렷이 남는다. "기독교에서는 내가 신이 될 수 없고, 불교는 될 수 있다"라고 했다. 일견 그럴듯해 보여 뇌리에 남은 것 같다.

기독교와 불교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구원'과 '해탈'로 구분된다. 이런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기독교는 '믿음', 불교는 '깨달음'의 길을 걸어야 한다. 여기서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고, 깨달음의 주체는 자신이다. '으뜸의 가르침'이라는 뜻의 종교(宗敎)라는 말은 불교에서 나왔다.

이런 차이에도 두 종교가 추구하는 목적은 구원으로 모아진다. 다만 구원의 공간이 기독교는 천국, 불교는 정토(淨土)라고 불린다. 세계적 불교 지도자로 지난달 입적한 틱낫한 스님은 '무소유'의 법정 스님처럼 이해하기 쉬운 말로 많은 사람에게 위안을 안겨줬다. 틱낫한 스님은 기독교와 불교의 수행 모두 '고향으로 가는 여정'이라고 했다. 불교도의 고향에는 부처님. 그리스도교의 고향에는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이다.

불교는 1638년 전인 384년(백제시대), 영광 법성포(法聖浦·성인인 마라난타가 성스러운 불법을 들여온 포구라는 의미)에 처음 상륙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 만큼 불교는 삶의 곳곳에 깊숙이 배어 있다. 일상에서 쓰는 많은 단어도 불교 경전을 기록한 산스크리트어에서 출발했다. 부처, 중, 절, 비구니, 사리, 열반, 보살 등 불교와 관련된 단어는 물론이고 찰나, 아바타, 건달, 아수라(장) 등이 있다.

해남은 천년고찰 대흥사를 품고 있다. 대흥사는 40개 이상의 말사를 가진 조계종 22교구의 본사이다. 23개의 교구 본사 가운데 전남에는 대흥사를 비롯 백양사(장성), 화엄사(구례), 송광사(순천) 등 4곳이 있다. 대흥사가 13명의 대종사(大宗師)를 배출한 데서 보듯 해남에서 불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이런 해남이 법정 스님을 낳았다. 법정 스님이 던진 화두는 '무소유'이다. 수필집 '무소유'에는 난초에 얽힌 체험의 글이 나온다. 법정 스님은 선물 받은 난초를 정성스레 길렀다. 장마가 개이고 외출하던 어느 날, 한낮에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자 뜰에 내놓은 난초가 문득 생각났다. 허둥지둥 돌아와 보니 난초잎이 축 늘어져 있다. 그때 집착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절절히 느꼈다. 며칠 후 놀러 온 친구에게 3년 가까이 정들었던 난초를 주고 나니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역설적인 이치)라고 적었다.

문내면 우수영 생가터에 지난달 임시 개관한 '법정 스님 마을도서관'이 조례 제정과 일부 보수작업을 거쳐 오는 4월께 정식 개관한다. 이곳에는 서책과 찻잔, 사진 등 스님의 흔적이 전시되어 있다. 야외에는 스님이 앉았던 송광사 불일암 의자를 그대로 만든 일명 빠삐용 의자가 있고 포토존에는 법정 스님의 말씀이 적혀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내일(음력 1월 26일)은 법정 스님이 입적한 지 12년이 되는 날이다. 가장 위대한 종교는 불교도 기독교도 아니고 친절이라고 설파했다. 무소유와 친절, 이웃에 대한 배려라는 법정 스님의 가르침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훨씬 따뜻하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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