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상(전 전남문화관광재단 사무처장)

 
 

어느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얼음이 녹으면 뭐가 되냐고 물었을 때 대부분 학생들은 '물'이라고 대답했지만 한 학생은 '봄이 온다'고 대답했다 한다. 이 사례를 들어 수직적 사고와 수평적 사고를 이야기하는 글과 강의가 넘쳐난다. 또 수직적 사고와 수평적 사고를 설명하기 위해 소환하는 사례가 달걀을 깨뜨려 세운 콜럼버스의 달걀 세우기와 1파운드의 살을 떼어가되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아야 한다는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계약서 판결이다.

주로 젊은이들은 수평적 사고를 갖고 있어 창의적이고, 기성세대는 수직적 사고에 갇혀있다고도 한다. 이미 재난문자에서도 60대 이상은 어르신으로 지칭되고 있고 억울하지만 보수세대로 분류되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는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60대 이상 기성세대는 보수성향으로 가는 결과가 기정사실이 돼 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진보적인 성향의 2030세대가 술 안주감으로 삼을 만하다. 60대들도 한때는 누구 못지않게 창의적이고 수평적 사고와 진보적인 사고를 갖고 살아왔을진대 그들의 세대에게 씌워진 꼬리표가 억울할 따름일 것이다.

그들은 당시에는 '국민학교'였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박정희 군사정권이 강요한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웠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20대가 되면서 수도권 거주자들은 전두환 정권이 앗아간 '서울의 봄'을 경험했으며 광주·전남 거주자들은 '80년 광주'를 경험했다. 아니 주도했다.

30대 후반에는 IMF 정리해고를 피하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어찌어찌 새천년이라는 2000년으로 넘어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훌쩍 지났다. 그래도 야당 대통령 후보도 존경하고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경험했다. 그런데 여론조사 결과에 덧칠해진 보수꼴통의 이미지는 무엇을 의미할까.

지난 주부터 해남군농업기술센터의 농산물 가공창업 교육을 받고 있다. 기존의 농산물 생산에서 벗어나 가공·유통까지 직접 하겠다는 군민 20여 명이 교육생으로 참여했다. 지역 인구 비율을 반영하듯 나이 지긋한 기성세대가 많다. 아이디어 상품 개발과 트렌드, 온라인 마케팅까지 배워야 한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는 '혼밥과 혼술' 취향의 2030세대의 구미에 맞는 농산물 가공상품을 만들어내야 하고 톡톡 튀는 마케팅 기법을 사용해야 하니 수평적 사고와 창의적인 발상이 전제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는 농산물 가공창업에 도전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이 몇 년째 이어지면서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붙은 사람들의 소비성향에서도 농산물 가공상품은 갈수록 시장이 넓어지고 있다. 날이 밝으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확진자 수에 위축돼 스스로 거리두기를 강화하는 세태에 맞는 마케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곧 거리두기를 완화할 분위기가 뉴스를 타고 있어 또 급변하는 사회상황을 반영하는 마케팅 기법이 동원돼야 하니 쉽지 않는 일이다.

교육생들의 세대 비율을 간파한 강사들도 마인드를 깨치는 교육내용으로 수평적 사고와 창의를 불러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한 강사는 'MH정신'을 강조한다. 스마트폰으로 슬쩍 검색해 봤으나 내용이 없다. 그럴 수밖에. '맨땅에 헤딩'이라는 것이다. 그래, 맨땅에 헤딩은 60대들의 트레이드 마크야.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말처럼 계곡물이 녹아 흐르는 우수에도 봄기운을 느낄 수 없는 60대의 도전과 진보적인 사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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