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순(커커필드-학교해남 대표)

 
 

필자는 오랜 시간 프랑스와 인도 및 제3세계를 오가며 다양한 문화유산정책을 연구했다. '문화'를 담는 공간으로 정의한 도시의 단점은 개선하고 장점은 보존하여 오늘날의 파리를 이루어 낸 프랑스에서 출발했다. 그 후 개발도상국들의 '문화' 도시 현장을 거쳐 해남에서 정체된 원도심과 지역의 재생을 '문화'로 풀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해남은 무분별한 개발에 노출되지 않은 단아하고 정갈한 모습이다. 반면 매년 진행되는 인구감소와 청년의 부재, 전 연령층을 위한 문화가 부족하다. 지난해 정부는 안타깝게도 해남이 포함된 지역소멸위기 지역을 발표했다. 이런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민과 실천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프랑스의 선례를 공유하고자 한다.

프랑스의 현대도시는 역사성을 간직한 원도심과 이질적이지 않는 방향으로 확장됐다. 그것은 위기에 처한 프랑스의 반전 노력 덕분이었다. 1789년 프랑스 시민의 거센 혁명으로 기존의 왕정체제와 정치 환경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시민 '국가'가 건립되었다.

그러나 배울 기회를 얻지 못했던 시민의 힘은 약했고 혼란의 시대가 계속되었다. 1, 2차 세계대전으로 나라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 프랑스는 뒤섞인 사회 계층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하나로 묶어야만 했다. 이를 위해 역사를 대변하는 의·식·주(건축, 미술, 공예, 식품, 의상 등)를 중점으로 정책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문화유산'을 지정하고 보존하는 교육정책이었다.

초기 문화부 장관인 앙드레 말로(1959-69 재임)는 '문화'를 모두가 누려야 하는 '기본권'으로 선언했고, 잭 랭(1981-93)은 누구나 문화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했다. 프랑스의 정체성은 '문화'를 통해 발현됐고 1972년부터 오늘날까지 249개국의 동참을 이끌어낸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의 '세계문화유산정책'의 기초가 되었다.

이런 실천적 정책은 평화와 공존 가운데 '현세대가 문화유산을 잘 누리고 다음 세대에게 그대로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문화정책은 시민들을 결속시켰고 동시에 유럽연합을 탄생시켰다.

오늘날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도시에는 1억6400만 명이 거주하고 300개 이상에 이른다. 이것은 주민의 동의와 참여 없이는 문화유산도시가 지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도시의 미래를 책임지고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주민이 갖는다는 것이다.

해남은 다양한 구성원, 지리적 특성과 풍부한 자연요소, 수많은 유무형 문화재와 이야기로 이뤄진 515개의 독특한 문화를 가진 마을공동체다. 아직 발굴, 지정되지 않은, 그리고 1900년대 이후부터 현재도 만들어지고 있는 잠재적인 마을공동체의 주거문화유산이 있다. 또한, 거리의 특성을 반영한 간판제작에서부터, 이웃을 배려한 형태와 재료의 집짓기, 미활용 공공재와 빈집 또는 빈 창고 재활용,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자연 친화적 원재료, 지역과 자연에 대해 자녀를 가르치는 교육의 방향 등 '나'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 지역의 '문화'가 되고 그것을 토대로 지역성이 지속한다.

해남의 '문화'를 위한 '나의 노력'과 '우리 공동체의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빈집과 폐교가 늘어나고 청년들이 떠나야 했거나 돌아올 수 없는 고향이 된 것은 누구를 탓해야 할까? 시대의 흐름에 부합한 당연한 현상이라고 치부하거나 '누군가는 해결해 주겠지' 하며 방심하진 않았나? 이제, 그 누군가가 진심으로 '나'가 되어야 할 때다.

소비의 문화가 아닌 나와 나의 모든 행위가 '주거문화유산'이 되는 '현장 위주'의 '교육적 문화'를 만들고 주민이 추진 주체가 된다면 위기의 해남은 새로운 출발점에 설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변화는 성장하고 있는 해남의 5800여 명의 아동 청소년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아무것도 없는 농촌 해남의 이미지' 속에 자란 아이들에게 해남의 정체성을 알려주고 자존감을 높여줄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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