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희(해남고 교사)

 
 

임인년 새해다.

묵은 한 해가 지나고 새로운 한 해가 오면 제야의 종소리를 듣거나 1월 1일 떠오르는 해를 꼭 봐야 한다며 밤잠을 설치며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었는데…. 마스크 세상이 여전히 진행 중이고, 그래서 그런지 별반 기대없는 새해를 맞이했다.

겨울방학이지만 보충수업으로 학교는 한창이었다. 4교시 수업을 마치고 이래저래 교무실에서 정리하다가 점심 먹으러 늦게 급식실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텅 빈 복도, 아무도 없는 불 꺼진 교실에서 한 여학생이 파란 봉투에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었다.

"○○아, 점심도 안 먹고 뭐하고 있냐?"

"점심 빨리 먹고 올라왔어요. 오늘 보충수업 마지막 날인데 쓰레기통이 이래서 그냥 제가 비울려구요."

오! 심쿵했다. 평소에도 남들이 하기 싫어하거나 꺼리는 일을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처리하는 봉사정신을 가진 남다른 친구였다. 생색을 내지 않고, 남몰래 선행하는 일은 아무 조건없이 준다는 뜻인데 어찌 이 친구에게 안 설렐 수가 있을까?

'설렘:마음이 가라앉지 아니하고 들떠서 두근거림'이라는 말은 내가 참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이다. '설렘이라는 단어를 최근에 썼던 적이 있었나, 이렇게 학교 현장에서 내 마음이 설렜던 적이 언제였었지?'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설렜던 상황이 없었다기보다는 교육 현장에서의 나의 마음가짐이, 학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무뎌진 것은 아닐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저 하루하루 지나가는 반복적인 일상으로만 여겼던 것 아닐까?'

설렘이라는 단어가 그동안 정말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N년 차인 교직 생활을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설레는 가슴으로 교단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 마음가짐, 꿈틀거리는 뜨거웠던 열정으로 밤새워 수업을 연구하며 담임 맡은 학생들 이름을 개학 전 몽땅 외우던 제자 사랑의 초심을 지나간 세월에 잃어버린 것만 같다. 처음엔 '좋은 교사'가 되겠다는 신념으로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았는가. 그래, 어렵게 생각할 건 없다. 잃어버린 것은 다시 찾으면 된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나는 새싹처럼/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아침처럼/새봄처럼/처음처럼/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설렘을 느끼게 해준 그 아이에게 감사하며 초심의 불씨를 살리는 것은 나의 몫이다. 설레는 새 학년을 맞이하련다. 신영복의 시 '처음처럼'을 다시 음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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