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50대 이상이라면 어릴 적 농번기 풍경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80, 90년대 이전까지 농번기는 주식인 보리와 벼를 심고 수확하는 논농사로 바쁜 시기이다. 고추나 배추 등 양념과 반찬류인 부식(副食)을 생산하는 밭농사 일은 주로 아낙네의 몫이다. 남정네는 밭에 거름 뿌리는 정도만 거들었을 뿐이다. 밭작물에 손이 더 가더라도 숫제 '농사축'에도 끼지 못했다. 나홀로 밭일에 나서는 우리의 어머니들은 눈물도 많이 쏟아냈을 것이다.

그 시대의 농번기는 보리를 베고 벼농사로 이어지는 5월 중순께 시작된다. 누수를 방지하기 위한 논두렁 만들기와 물 대기를 마친 농촌 들녘에는 동네 사람들이 품앗이로 하는 모내기가 6월 한 달 내내 펼쳐진다.

예부터 내려온 미풍양속인 품앗이는 서로 일을 교환하는 공동노동이다.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그래서 더 사사로운 품앗이는 마을 전체의 일을 하기 위해 꾸려진 두레와 사뭇 다르다. 요즘의 마을공동체는 두레에 더 가깝다. 품앗이 모내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잠시 쉬는 시간에 먹는 새참이다. 새참에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농주(農酒)인 막걸리이다. 막걸리 배달은 아이들 몫이다. 주조장이나 가게에서 주전자에 담아 사오는 막걸리를 도중에 한 모금씩 마셔본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군대 무용담처럼 술자리에서 가끔 안주로 나오는 향수이다.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물을 채워 넣어 어른들로부터 막걸리 맛이 이상하다는 움찔한 말도 들었다. 어른들도 경험상 다 알고 있었을 터이다.

벼농사는 모내기를 마치면 풀 뽑기, 농약 방제가 한여름 내내 뙤약볕 아래에서 계속된다. 홀로 농약을 뿌리다 중독되는 사고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물이 부족한 시대의 쌀농사에 물 대기는 한해 농사를 가름할 정도로 아주 중요하다. 논물을 두고 싸움도 빈번하다. 이 때문에 자기 잇속만 차린다는 의미의 '제 논에 물대기'(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속담도 생겨났다.

벼 수확은 햅쌀이 나오는 추석 전후인 9월 말이나 10월부터 한 달 이상 계속된다. 품앗이 벼 베기를 마치면 말리기(도중에 비가 내리면 뒤집기도 해야 한다), 다발 묶기, 도로가로 옮기기, 집으로 나르기(지게나 경운기), 벼 쌓기, 타작(품앗이), 창고 저장 등으로 쉼없이 이어진다. 이삭줍기도 있고, 수매를 위해서는 말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런 숱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한 해 벼농사가 마무리된다. 이를 생각하면 밥알 하나하나가 그토록 귀할 수 없게 다가온다. 이젠 벼농사의 기계화율이 거의 100%에 이른다. 수십 가지의 일거리가 단순화되고 이마저도 농기계가 거의 해낸다. 반면에 밭농사의 기계화율은 60% 정도에 그친다. 이도 착시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해남이 주산지인 배추나 고추를 심고 수확하는 모든 작업은 손으로 이뤄진다. 고구마도 파종은 오로지 손작업이다. 기계화율이 0%인 셈이다.

예전의 밭작물은 대부분 자가소비(自家消費)이고, 일손도 많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농가 소득에서 밭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높아졌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맞물리며 농촌의 최대 현안은 밭작물의 일손 부족이다. 마침 해남군의회는 농촌의 인력난 해소방안을 찾기 위한 토론회를 잇따라 마련했다. 토론회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 이를 어떻게 농촌 현장에 접목하고 개선하느냐가 과제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농촌의 '어제 이야기'에 이어 '오늘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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