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혁승(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메타버스, 인공지능, 블록체인,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 디지털 트윈, 사물인터넷, 자율운행자동차, 클라우드 기반 컴퓨팅, 스마트 공장, 스마트 농장, 플랫폼경제, 긱 경제 등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매우 생소하던 기술과 개념들이 우리의 일상 속으로 깊이 스며들고 있다. 우리는 지금 4차 산업혁명이라는 대격변기를 통과하고 있다. 이 기간을 통과하고 나면 이전의 경제사회적 질서로 복귀하는 일시적 혼란기가 아니라, 머지않아 우리를 매우 낯선 경제사회적 조건 및 질서와 맞닥뜨리게 할 불연속적 대변혁기이다.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 사이에 태어난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는 전후 원조물자에 의존해 살던 시절부터 UN 무역개발회의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선진국 진입에 이르기까지 압축적 경제성장과 수차에 걸친 정치적, 사회적 격변을 경험하였다. 서구 선진국들이 대체로 한 두 세기에 걸쳐 경험했던 변화를 반세기 만에 경험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대격변은 베이비붐 세대가 압축적으로 경험했던 도전들과는 근본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다. 이전의 도전들은 산업화에 앞서간 선도국가들이 만들어놓은 길을 다른 국가들이 한 걸음 내디딜 때 두세 걸음 내디디며 뒤쫓아 가면 넘어설 수 있는 도전들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불연속적 대격변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야 하는 도전이기에 높은 불확실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물리적 현실을 기본 인프라로 삼아 형성·운영되어 온 사회경제적 질서가 디지털 가상 현실과 온·오프 융합 현실을 기본 인프라로 한 새로운 사회경제적 질서와 자리바꿈을 하고 있다. 즉, 디지털 대전환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러한 디지털 대전환을 앞당기고 있으며, 전 인류가 그러한 대격변을 수용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격변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하는 불연속적 대격변기는 과거의 성공 경험이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 오프라인 인프라를 기반으로 형성된 사회경제적 질서 속에서 효과를 발휘했던 성공 공식이 디지털 가상과 온·오프 융합 인프라 위에서 작동하는 사회경제적 질서 속에서는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산업화의 후발주자로서 효율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선도국가들을 추격하는 전략을 성공적으로 달성했던 우리의 경험 또한 오늘날과 같은 불연속적 대격변기에는 별무소용이 되기 쉽다. 오히려 과거의 경험과 성공 공식에 대한 의존과 집착이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떨어뜨리는 '성공의 덫'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창조적 혁신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농촌에서 디지털 전환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지, 그 장점을 활용한 혁신의 가능성은 무엇일지, 좁게는 해남, 넓게는 농촌의 지역적 특성을 혁신의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미 알고 있는 정답이 오답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이질적이고 낯선 것에 대한 개방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창조적 혁신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이 만나 충돌하는 경계에서 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개방성을 높이는 노력을 하려 할 때 베이비붐 세대를 포함한 기성세대가 일차적으로 맞닥뜨려야 할 이질적인 대상은 통상 MZ세대라고 불리는 디지털 세대의 사고 및 생활방식이 될 것이다.

농촌이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를 창조적 혁신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면, 디지털 가상현실과 온·오프 융합현실을 주 활동 기반으로 삼고 있는 디지털 세대의 사고방식과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초청하고, 그들이 농촌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혁신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기반 여건을 마련하는 일부터 지역사회가 함께 나서는 것은 어떨까?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