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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농촌의 희생정거섭(해남군농민회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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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1.14  16: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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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패망하고 미군이 점령한 한국 사회는 혼란의 시대였다. 1945년 8월을 기준으로 소매 물가는 17배나 상승하고 도매 물가는 33배 뛰었다. 생산성은 후퇴하고 국내로 들어오는 귀환인구가 급증하였다. 일제가 패망 직전 찍어낸 37억 원 때문에 통화량이 급증한데다 귀환 동포들의 환전을 위해 찍어낸 통화량과 일반은행 대출 증대로 통화량이 많아지면서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물가가 상승했다. 곡물가격의 상승은 서민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였다. 미군정은 미곡가격 안정책으로 미곡 자유시장을 개설하였으나 쌀을 비롯한 곡물가격은 오히려 폭등하는 결과를 가져왔다.이후 미군정은 쌀가격 안정을 위해 강제력을 동원하여 농촌에서 3분의 1 가격으로 쌀을 수집하기에 이르렀는데 농민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이승만의 농업정책은 농산물 저가정책으로 국민의 기근을 해소하고자 했다. 또한 농민에게 부과하는 조세를 통합하여 임시토지수득세를 부과했는데 6·25전쟁 시기 양곡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현물로 납부하도록 했다. 전시인플레 억제를 위해 금납제인 지세를 물납제인 임시토지수득세로 바꾼 것이다. 엄청난 전시 인플레 부담을 고스란히 농민에게 떠넘기는 결과가 되어 농민들의 희생을 통해 막대한 전비조달을 획책한 것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현물납부로 물가가 상승하고 분배농지에 대한 상환압박까지 겹치면서 농민들은 식량부족과 고리대에 시달려야 했다.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박정희는 처음에는 농촌의 열악한 환경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시기 인구의 대부분이 농촌에 거주하는 상황에서 정권의 지지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농촌위주 정책을 폈다. 대표적인 정책이 농산물가격유지법이다. 정부가 국내산 곡물에 대하여 생산비용을 보상해줄 수 있는 가격으로 매입하여 소비자에게 시장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고 그 차액을 정부 재정으로 부담하는 제도이다. 생산자가격을 높이 책정하여 농가경제를 안정시키고 일정한 수준의 농산물 생산을 유지하는 한편, 소비자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해 소비자의 가계부담을 줄이고 물가를 안정하고자 했다.

농산물은 공급이 특정 기간에 집중되고 생산규모가 자연조건에 따라 좌우되고 유통비용이 크며, 대부분 중·소농에 의해 생산된다는 특성 때문에 가격경쟁력이 불리한 상품이었다. 농산물의 불리한 가격경쟁력을 보완하고 일정한 농산물의 생산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된 것이 1961년 6월 27일 공포된 농산물가격유지법(이중곡가제)이다. 이 제도는 도시에 값싼 농산물을 공급하여 저임금노동을 통한 상품생산으로 국제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경쟁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60년대 후반 산업화 과정에서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관심은 멀어지게 되었다.

임인년 새해에도 도시의 엄청난 건축 폐기물과 병원 쓰레기, 각종 산업폐기물, 생활쓰레기가 농촌으로 몰려들고 분별없이 들어서는 태양광발전, 풍력발전소, 송전탑 설치 등 도시의 쾌적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그리고 공장과 대기업들의 돈벌이를 위해 농민들의 삶의 터전을 앗아가고 있다.

헌법이 보장한 경자유전의 원칙이 무너지고 이대로 간다면 15년 후에는 84%가 비농민이 농지를 소유하게 된다고 한다. 50%가 넘는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농지는 자본가와 도시민, 고위공직자, 정치인들의 투기장으로 전락하고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고 힘들게 농사지어도 제가격을 못 받고 농촌은 소외되는 현실에서 이촌향도(離村向都)는 꾸준히 진행되고 농촌지역은 소멸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1965년 총인구 2870만명 중 농가인구는 1581만명이었다. 20년 후인 1985년 총인구 4080만명 중 농가인구는 852만명으로 줄었고 2021년 4월 기준 총인구 5163만명에서 농가인구는 232만명, 농가 수는 103만6000가구로 전체인구에서 4.5% 수준까지 떨어졌다. 비싼 농지에서 생산비도 많이 들어가는 국산 농산물에 의존하는 것보다 값싼 수입농산물로 대체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적폐관료와 정치인들을 몰아내고 임인년 새해에는 농업정책의 대전환을 통해 살맛나는 농촌을 만드는 원년이 되기를 희망한다면 과한 욕심일까?

농업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농민의 삶이 안정되고 농촌이 살만할 때 비로소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농민의 삶이 어려웠을 때는 많은 국가들이 혼란을 겪고 쇠퇴했다. 이러한 농업의 역사를 비추어 볼 때 오늘날 우리 농촌의 현실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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