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희(목포대 강사·해담은3차아파트 공동체 대표)

 
 

2022년 1월, 지난해 주민공모로 마을공동체 만들기와 같은 사업을 진행했던 곳은 정산보고서를 작성하느라 분주했거나 분주할 거다. 국민의 혈세를 보조금으로 받아서 하는 활동이라 아주 적은 돈도 헛되이 쓰지 않을 텐데도 청렴결의서를 내라 하고 설상가상으로 받은 보조금의 액수에 비해 100쪽이 넘는 한 권의 보고서를 만들어야 해서 사실 성가신 일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2021년 전남도 사회혁신 공모사업에도 선정되어 작년 말까지 '해남은 노는 물이 달라요'에 파묻혀 살았는데 정산보고서를 작성하느라 해가 바뀐 지금도 작년에 머물러 살고 있다. 정산 자료를 정리하면서 작년에 공모를 여러 번 했다가 떨어져 낙담하던 지인이 생각났다. 남들은 열두 달을 살 때, 그는 두서너 달을 공모 준비에 쓰느라 열두 달을 살아내지 못했을 테지만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바쁜 지금은 차라리 그가 부럽다.

공모(公募)라는 단어는 일반에게 널리 공개하여 모집함이란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는데 중앙 부처뿐만 아니라 지자체에도 주민공모 사업이 많다. 적은 액수를 많은 단체나 마을에 나누어 주는 지자체 주민공모사업으로는 마을공동체 만들기와 사회혁신 등이 있다. 주민이 제안하고 참여하면 행정은 사업 예산을 지원한다.

'해남은 노는 물이 달라요'는 정책 설계 단계에는 현장 활동가들이 참여하지 않은, 행정이 설계한 정책에 공모를 했으니 엄밀히 따지면 주민주도 사업은 아닌 것 같은데 해남의 주민주도 사업이라고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해남은 노는 물이 달라요'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여러 활동 제약이 있었지만 기후위기와 자원순환 등에 대한 환경교육을 받고 수질정화와 악취제거에 효과가 있다는 이엠(EM)과 황토를 섞어 흙공을 만들어 발효시켜 해남천에 던지는 활동이었다. 작년 5월부터 12월 말까지 해남천 상류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 기관단체, 해남동초등학교 아이들까지 합해 수백 명이 '이엠흙공아! 해남천을 부탁해~'를 외치며 참여했다. 교육을 받고 환경활동을 함께한 우리는 해남천 지킴이들이다. 이 지면을 빌어 그동안 활동에 참여한 모든 분께 감사함을 전한다.

참여자들은 세상을 바꾸는 데는 작고 사소한 것(일)으로도 충분하며 아무 말도,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며 지속적으로 활동하기를 원하지만 주민공모사업을 진행하면서 느낀 어려움이 많아서 애매한 웃음만 지었다.

주민공모사업을 시작하면서 느낀 문제점은 먼저, 자부담이다. 행정이 어떤 사업을 할 때는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 이외의 자부담을 하지 않으면서 주민공모사업은 자부담을 강요한다. '해남은 노는 물이 달라요'도 사업자금의 10%인 100만원의 자부담이 있어 참여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둘째로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인데, 활동가들에게 지나치게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시스템이라는 거다. 활동가들 스스로 활동비를 내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바쁘고 분주하기만 하니 활동가들 대부분이 무력감이나 회의감을 가지면서 지속가능성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셋째로, 서두에 말한 것처럼 정산 절차가 너무 복잡해서 활동가들이 회계전문가까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민공모 사업은 대부분 1년의 사업이라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고 매년 공모해야 한다는 점도 어렵다.

주민공모의 여러 문제점이 개선되어 주민이 스스로 행복한 삶을 위해 주체적으로, 역동적으로, 창의적으로 참주인의 삶을 설계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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