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은 아주 먼 옛날, 옛적의 이야기를 꺼낼 때 단골로 끄집어내는 표현이다. 어릴 적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의아하게 여겼다. 담배는 임진왜란(1592년)을 계기로 전래했다는데, '까마득한 옛날'이 고작 400년 남짓밖에 안 된다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까마득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려면 가장 최근의 왕조(조선)보다는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최소한 고려나 삼국시대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400년 전이라면 15대 할아버지 정도의 시대로 까마득하기는 하다. 근데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라는 말의 유래에 다가서면 '그리운 시절'에 방점이 있어 의문이 다소나마 풀린다.

담배가 조선에 들어오고 17세기에는 남녀노소, 신분을 불문하고 말 그대로 '기나 고동(기는 게, 고동은 고둥의 방언)'이나 코와 입으로 연기를 뿜어댔던 모양이다. 18세기에 접어들자 이게 양반의 눈에 마뜩잖았나 보다. 하층민은 대놓고 피지 못하도록 '담배 예절'을 만든 것이다.(예절의 일부는 21세기인 지금도 유효하다.) 맘 놓고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된 하층민이 '호랑이(누구나의 의인화) 담배 피던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했다는 것이다.

호랑이는 지금 동물원에나 가야 만나볼 수 있다. 한반도에서는 70여 년 전 자취를 감췄다. 그렇지만 단군신화를 시작으로 호랑이처럼 설화나 동화, 속담에 단골로 등장하는 동물도 드물다. 숭배의 대상으로, 때로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나온다. 한반도 지형도 호랑이를 쫓아 가히 '호랑이의 나라'라고 할 만하다.

줄잡아 수천 개는 됨직한 속담이나 사자성어 가운데 몇 개를 들춰내 본다.

'호랑이 새끼를 키우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오뉴월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 '이빨 빠진 호랑이' 등등. 용호상박(龍虎相搏), 호시탐탐(虎視眈眈), 호가호위(狐假虎威), 기호지세(騎虎之勢), 가정맹호(苛政猛虎) 등 사자성어도 수없이 많다. 호환마마는 조선시대 후반 가장 무서운 것을 일컬었다. 호환(虎患)은 호랑이의 습격, 마마는 천연두를 말한다. 지금은 둘 다 우리나라에서 멸종의 운명을 맞았다. 호구(虎口)는 바둑 용어이자 여기에서 파생돼 '봉'을 뜻한다. 1973년 개봉된 이소룡 주연의 '용쟁호투(龍爭虎鬪)'는 장년층에 오래 각인되는 영화이다.

호랑이는 풍수지리에서도 명당의 조건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인왕산은 낙산(좌청룡)과 함께 서울을 지키는 우백호(右白虎)의 기운을 가졌다고 한다.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인 녹우당도 좌청룡 우백호의 전형적인 명당으로 꼽힌다. 해남을 보자면 봉황 형국의 두륜산을 중심으로 주작산이 좌청룡, 달마산이 우백호라고 한다.

2022년은 호랑이해인 임인년(壬寅年)이다. 오행에서 임은 검은색, 인은 호랑이를 뜻한다고 하니 '검은 호랑이의 해'인 셈이다. 호랑이 무대인 새해에는 대통령선거(3월 9일)와 지방선거(6월 1일)가 있다. 대선 후보의 기세에 눌려 지방선거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형국이다.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선'에 고민도 깊어간다. 또 하나, 3년째 접어든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호랑이는 예부터 그림이나 부적에 새겨져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고 했다. 호랑이의 용맹함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박멸하는 임인년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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