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식(마산초 용전분교 교사)

 
 

학년 말이 되고 시간 여유가 있으니 지난 일들이 생각난다. 시골 작은 학교에서 근무연한 4년을 넘기고 3년을 더 있었다. 교사 몇몇이 '전남 무지개 학교', '혁신학교' 실천이라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말 열심히 했다. 시작하는 학기마다 새로운 것보다 쭉 해왔던 활동들을 이름만 바꾸어 또 시작하던 타성에서 벗어나고자 과감하게 버릴 것은 버리고 색다른 체험학습을 고민하고 텃밭과 논을 만들고 달마산 곳곳을 탐색하고 다른 학교에서 참관 오면 자랑하듯 설명하고, 작은 분교를 본교로 만들었다는 방송과 광고와 칭찬들이 즐거웠다.

통학차 출발 전까지는 운동장에서, 교실 귀퉁이에서 떠들썩하게 실컷 놀다가 놀던 물건들 그대로 두고 간 다음 날 '청소해라. 정리정돈해라' 하면 다 놀고 나서 정리하겠다고 웃으며 말하는 학생들 얼굴에서는 학습의 피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교사 능력 밖의 일들이 발목을 잡았다. 교사들과 교감, 교장은 기회가 되면 갈 데로 가고, 행정실 주무관과 작은 소통문제, 자녀 졸업하면 관심 멀어진 학부모들. 같이 열심히 하자던 처음 다짐이 사라지고 있었다.

7년을 돌아보니 딱 보이고 잡히는 것이 없었다. 국악합주단 만들고 학생 개인별 시집 만들고 싶었던, 교사로서 욕심도 희미해지고 있었다. 부랴부랴 모아두었던 내 글과 학생들 글 정리해 작품성은 없는 '시집' 한 권 만들어 들고 나도 학교를 옮겼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12월. 지금 학교에서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모두 돌아가면 학교는 쓸쓸해진다. 학생 몇 되지 않은 작은 학교인데도 정해진 일정대로 바쁘게 움직이는 학생들이 안타깝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 할 것이 많아 학습의 피로에 지친 학생들이 그랬고, 다른 일이 있을 때는 교과전담 수업시간에 할 때가 많아 어떤 날은 수업 2, 3시간만 할 때가 있어 '놀고먹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겨울방학이 다가온다. 무엇을 했고 무엇이 남았는가, 내 손에 잡히는 것은 있는가? 내세울게 없다. 음악 수업이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만은 아니었고, 과학 시간은 실험에서 실패가 많았다. 딱 1년 담임할 때 썼던 글 몇 편뿐이다. '시집' 한 권 묶을 글도 되지 않는다.

학교 울타리 나무들은 잎이 다 떨어져 천장 뜯어진 집처럼 보인다. 마무리하는 수업 시간에는 볕 드는 울타리 아래서 내가 쓴 시 한 편 읽어주고 교실로 들어와 동요 '겨울나무'를 들려주고 연주하고 같이 부르고 마무리하며 계속 있을지, 다른 학교로 갈지 결정해야겠다.

'선생님은 맨날 맨날/ 시를 읽자/ 시를 읽자 한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생각난다.// 내가 오줌마렵다 하면/ 뒤에서 내 다리를 들어 잡고 앉아/ 할머니는 시 시 했다./ 그럴 때 나는 오줌을 쌌다.// 선생님이 읽어주고/ 나한테 읽어 보라는 날 물어봤다/ 할머니 말은 쉬- 쉬- 였고/ 선생님 말은 시- 시- 이다//' (필자 졸시 '내가 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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