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권철(해남윤씨 중앙종친회장)

 
 

지난 11월 18일 진도군 임회면의 굴포리 남선리 백동리 신동리 4개 마을 250세대 300여 주민과 김영록 전남지사, 윤재갑 국회의원, 이동진 진도군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고산과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제막식이 있었다.

전남도비 3억원, 진도군비 2억원으로 지난 5월부터 굴포리의 고산 사당을 보수하고 주위를 정화해 성역화하였으며 사적비와 시비를 새로 세운 후 갖게 된 의미있는 제막식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 고산사당이 자리잡게된 사연으로 지금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370여 년 전의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회자되고 있다.

고산유물전시관에 보관된 기록에 의하면 고산의 조부 윤의중이 굴포리에서 잠시 기거한 사실이 있고, 그 후 고산이 나이 50세가 넘어 2여 년간 머물렀다.

마을 앞바다에 높이 3m, 길이 380m의 방조제를 축조하여 100㏊의 농지를 만들어 4개 마을 주민들에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했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는 이 방조제의 이름이 굴포리 방조제와 함께 나이 든 어른들은 '윤고산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방조제가 일직선이 아니고 뱀 모양으로 구불구불하게 축조하게 된 설화를 지금도 주민들은 잘 알고 있다.

설화에 의하면 방조제를 쌓는 데 완공될 즈음이면 둑이 무너지기를 수 차례 반복되었다. 이를 이상히 여겨 골똘히 생각하다 잠이 들었는데 꿈에 서리가 내릴 계절이 아닌데도 방조제 위치대로 서리가 내려 꿈을 깨보니 하얗게 서리가 내려 있어서 그 길로 방조제를 축조하니 둑이 무너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방조제 둑이 구불구불하였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방조제의 시초는 1255년 고려 고종때이며, 민간사업으로는 굴포리의 윤고산방조제가 최초라고 전북 새만금 방조제 홍보관에 적시되어 있다.

이와 같은 연유로 굴포리에 고산 사당을 짓고 그 은공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매년 정월 대보름날이면 4개 마을 주민들이 합동으로 고산에 대한 감사제와 풍년과 풍어를 기리는 당제를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또 고산은 완도 노화도에도 130정보의 간척지를 조성해 백성의 구휼에 힘썼다.

고산의 고조부 어초은 효정은 세금을 못 내 옥에 갇혀 있는 백성을 위해서 세 번이나 세금을 대납하고 옥문을 열어 석방시켰다고 해서 이른바 3개 옥문 적선지가의 아름다운 별칭은 선대의 선행으로 후손이 누리는 기분 좋은 보너스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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