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군청사 앞 군민광장의 엊그제 모습은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시계열(時系列)의 현장이었다.

가림막 너머에서 구청사의 막바지 철거작업을 알려주는 둔탁한 소리가 퍼져 나오고, 천막으로 만든 3개의 이동선별검사소 앞에는 몇몇 군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려고 기다린다.

코로나가 해남읍을 강타하자 검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마치 수험생처럼 걱정과 긴장감이 묻어있다. 하염없는 침묵에 터파기 소리만 무심하게 들려온다. 연말을 맞은 해남의 자화상이다. 조금 멀찍이 서 있는 성탄트리가 희망을 노래하며 이를 지켜보는 듯하다.

해남군 옛 청사는 얼마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구청사는 1968년 이후 52년 동안 해남행정의 중심역할을 했다. 군민들의 손때가 많이 묻어있다. 저물어가는 한 해처럼 해남군민들에게 아쉬움도 많이 남긴다. 서운함을 조금이나마 달래고자 철거공사 직전인 10월에 고별전을 하기도 했다. 이젠 더 번듯한 신청사가 그 역할을 떠안는다.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랬던 것처럼 어김없이 미래로 흘러간다면 신청사 또한 언젠가는 역사 속으로 떠밀려 사라질 것이다. 시간이라는 마술이 존재하는 한 현재는 미래에 밀려나 과거로 묻히는 게 삼라만상의 이치리라.

광장 한켠의 선별검사소가 말해주듯 코로나는 현재 진행형이다. 가슴을 졸이게 하며 간당간당하던 '해남의 코로나'는 잠잠해지는가 싶으면 어김없이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8월과 9월을 잇는 시기에 송지에서 수십 명이 감염되어 지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고, 11월 중순에는 황산에서 또다시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했다. 한 해를 조용히 넘기려는 순간에는 해남의 한복판을 헤집었다. 한두 달 시차를 두고 찾아온 불청객이다. 코로나가 지구촌이 공동체로 묶여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주었지만, 이 또한 과거지사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군민광장 초입에 서 있는 성탄트리는 한 해의 마지막 달력을 접해야 하는 연말이면 어김없이 등장한다. 평화와 행복이라는 염원과 소망을 담아서 '희망의 미래'를 비춰준다. 성탄트리의 유래는 여러 갈래가 있다. 그 중 하나가 16세기에 살았던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이야기이다. 루터는 성탄 이브에 숲속을 걷다가 환히 빛나는 한 그루의 나무를 발견하고 깨달았다. 개인은 한 나무와 같지만 예수님의 빛을 받으면 주변을 아름답게 비출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루터는 전나무를 가져와 성탄트리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오늘 저녁은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내일은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이다. 대부분 종교가 그러하듯 기독교 성경의 말씀도 복음이자 희망의 메시지이다. 희망이 신기루일지언정, 우리는 그 희망을 먹고 산다.

'감사라는 말만 들어도/마음엔 해가 뜨고/얼굴엔 웃음꽃이 피어납니다/하루 내내 한 달 내내/그리고 일 년 내내/아직도 감사는 끝나지 않은/기도의 시작일 뿐입니다/받은 은혜 받은 사랑 잊지 않고/살도록 도와주십시오//다시 오는 새해에는/더 많이 감사해서 후회 없기를/간절히 기도합니다/또한 감사의 기쁨을 감사드립니다'(이해인 수녀의 송년 기도시 '감사의 기쁨')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연말마다 '후회'가 꼬리표처럼 따라오지만, 희망을 머금고 내일에 또다시 희망을 얹어본다. 군민광장의 수성송(守城松)이 그 내일을 오래도록 지켜볼 것이다. 500년의 풍상을 헤쳐왔듯이 해남의 미래도 함께 지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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