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 패(貝)'가 들어간 한자는 대체로 재물이나 어떤 귀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재화(財貨)나 화폐(貨幣), 임대(賃貸) 등이 그렇고, 그걸 나누면 가난(貧)을 뜻한다. 이는 고대 중국(은나라)에서 상인이 조개를 화폐로 사용한 역사에서 비롯됐다. 당시 바다에서 나는 마노조개는 내륙에서 아주 귀했다. 패의 한자도 마노조개를 본떠 만들어졌다. 한자의 화(貨)는 돈과 상품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돈을 매개로 상품을 구입하거나 상품 제공을 대가로 돈을 받는 것처럼 서로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래서 조개 위에 붙은 '될 화(化)'는 음을 나타내지만 한편으론 교환성의 뜻이 들어있다는 풀이도 있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신용을 담보로 한 여러 대체화폐가 등장했다. 그중 하나가 상품권이다. 상품권은 불특정 소지인(채권자)이 액면가에 상응하는 재화(서비스)와 교환할 수 있는 유가증권이다. 그래서 발행처(채무자)는 신용이 높아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는 '○○사랑상품권'이 골목상권에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이와 유사한 상품권이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여러 이름으로 선보였으나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러다가 점차 지역경제의 선순환 효과가 입증되고 정부가 발행액의 일정 비율을 지원하자 3년 전부터 전국의 지자체들이 앞다퉈 뛰어들었다. 지역사랑상품권을 흔히 지역화폐라고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옳바른 용어는 아니다.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점은 그렇더라도, 사용범위가 가맹점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4월 첫선을 보인 해남사랑상품권에 대한 지역민의 사랑은 남다르다. 올해 주민에게 판매하기로 한 목표치 1300억 원(정책발행분 300억 원 제외)이 한 달 앞선 지난달 말에 동났다. 10% 할인이라는 당근이 작용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평상(5% 할인)으로 돌아간 12월에는 다소 주춤할 것이다.

내년에는 해남사랑상품권의 기세가 한풀 꺾일 것 같아 우려스럽다. 할인행사에 보태라고 한 정부 예산이 올해의 5분의 1수준으로 줄어든 탓이다. 이를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해남사랑상품권의 지원 규모는 20억 원 수준으로 쪼그라든다. 해남군도 이런 상황을 감안해 내년에는 올해보다 500억 원이 줄어든 800억 원(정책분 100억 원 제외)을 발행한다는 계획이다.

해남사랑상품권은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위축된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사용하는 지역민들도 10% 할인에다 포인트 적립이라는 부가 혜택을 받고 있다. 이게 줄어들면 다가오는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다.

예산을 짠 기획재정부는 지역상품권이 지자체의 일이고 한시 지원이니만큼 알아서 하라고 한다. 응당 맞는 말이기는 하나 어쩐지 나랏돈을 제 호주머니 돈처럼 주물럭거리는 모양새가 불편하다. 다만 당정은 올해의 절반 수준인 6000억 원 정도로 합의한 것으로 보여 다행스럽기는 하다.

언젠가는 정부의 예산지원이 끊길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발행처인 자치단체는 지역경제의 선순환이라는 큰 틀에서 대응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다른 예산을 좀 줄이더라도 지역상품권의 활성화 길을 찾아보는 것이다. 지역민, 소상공인 등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간다면 우선순위에 올리는 게 마땅하다. 어찌 보면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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