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상(전 전남문화관광재단 사무처장)

 
 

얼마 전 땅끝권역의 마을들을 다녀왔다. 거창하게 얘기하면 자연자원을 조사했지만 주로 마을숲과 수목을 살펴보았다. 마을숲은 산림임업사전에 산림문화의 보전과 지역주민의 생활환경 개선 등을 위해 마을 주변에 조성해 관리하는 산림 및 수목이라고 정의해 놓았다. 전통적으로 마을 사람들의 삶과 관련하여 마을 주변에 조성되어 온 숲이라는 것이다. 마을숲은 대부분 방풍림처럼 사람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자연환경을 인위적으로 보완하여 실한 곳으로 바꾸려고 하는 방법인 '비보'가 목적이기도 하다.

땅끝관광지 산책로의 시작지점인 땅끝마을의 팽나무숲은 높이 16m, 지름 60cm의 팽나무와 높이가 20m에 이르는 곰솔이 숲을 이루고 있다. 송호마을은 송호해수욕장으로 유명하며 마을과 곰솔숲, 모래사장, 바다로 이어지는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송종마을의 곰솔숲도 바닷바람을 막아준다. 모두 방풍림이다. 갈산마을의 후박나무와 동백나무숲은 방풍림이면서도 당집을 둘러싼 당숲으로 당집의 위세만큼 나무를 건들거나 벌목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한때 생활을 위해서 무차별적인 벌목을 했던 시기에도 지켜졌다.

땅끝권역 뿐만 아니라 우리 지역의 마을에는 당산나무나 마을숲이 존재한다. 큰마을에서는 아리대미와 우대미를 가로지르는 언덕배기에 길게 늘어선 마을숲도 볼 수 있다. 마을 입구 당산나무 아래에는 대부분 우산각이 있다. 우산각에서 마을자치가 펼쳐졌다. 입법, 사법, 행정까지를 포함한 마을자치이다. 향약을 만들고, 덕석몰이를 하고, 울력을 동원하기도 했다. 마을규약을 만들고, 심지어 패륜아와 주취폭행죄를 저지른 자를 덕석에 말아 응징하고, 물이 귀한 시절에 수로에 풀이 우거졌기에 물흐름을 좋게 하자고 풀베기 울력을 결정하는 것이다.

특별한 목적 아래 보호되거나 특별한 용도로 활용되는 마을의 보호수나 당산나무는 마을 문화의 요체이자 조상들의 삶이 오롯이 녹아 있다. 송호항과 땅끝황토나라테마촌 사이에 있는 마을숲은 방풍림이자 어부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어부들이 어구를 손질하는데 그늘을 만들어 주는 곳이다.

이러한 마을숲과 당산나무, 노거수를 보호하거나 관리하는 노력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보호수나 관광지를 빼고는 나무 이름표 하나 없다는 것이다. 마을사람들도 수종이나 수령을 모른다. 한여름 넓고 짙은 그늘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주로 팽나무나 느티나무 등 낙엽활엽수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낙엽이 지고 나면 수목 전문가가 아니면 수피만 보고 수종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관광산업이 강조되면서 웬만하면 먹히질 않는 스토리텔링 시대에 살고 있다. 설령 보호수가 아니더라도 마을주민들의 삶과 문화가 묻어 있는 마을숲에는 나무 이름표와 간단한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안내 입간판을 만드는 사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마을숲이 공공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관광지나 사업비 확보가 쉬운 사업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곧 마을숲을 포함한 '마을'도 중요한 지역자원이 될 것이 분명하다. 주민자치가 활성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장비를 이용한 수목 이식기술의 발달로 마을숲이 빠르게 훼손되고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폐가가 늘면서 고향집에 관심이 없는 세대들이 노거수를 팔아치우기 때문이다. 보상제도 도입으로 마을에 그대로 남겨두거나 해남군의 나무은행을 통한 이식사업으로 마을숲이나 나무에 관한 한 공공재 관리 수준까지 끌어올렸으면 한다.

폐교를 민간에 팔아 태양광발전소가 되었던 아픈 기억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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