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률(교사)

 
 

종종 시골 동네를 돌아본다. 오후의 햇살이 드리운 양짓녘은 고요함이 짙게 배어 있는 유화 같다. 이즈음 어느 동네이건 고즈넉하다.

간간이 허리 굽은 노인네가 집 근처 밭에서 엉금엉금 거북이처럼 움직이고, 묵힌 밭을 점령한 갖가지 풀들이 날리는 씨앗에 햇살이 반짝거리기도 한다. 역설적으로 평화롭기까지 하다.

골목에 들어서면 한결 을씨년스럽다. 예스러운 흙담벽에 담쟁이가 가을을 머금고 붉거나 누렇게 멈춰있기도 하고, 그 한쪽을 시멘트를 발라 희비덕덕한 곳도 있다.

보려고 한 것은 아닌데도 집 마당엔 풀들이 잔뜩 들어와 삶의 흔적들을 분해하고 있다. 어쩌면 바쁘게 일하는 것은 그들뿐이리라. 아, 농부들 떠난 논들을 임대해 몇백 마지기가 넘는 '어느 김씨'와 그가 부리는 농기계들도 바쁘다.

이젠 동네에서 농사랍시고 짓는 사람은 한두 명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 종종 밭떼기 하나 정도 거북이처럼 지어먹는 사람들을 뺀다면 말이다. 이 거북이 같은 사람들도 푹푹 줄어들고 있다. 아마도 동네 사람들 반은 요양원에 가 있을 것이다. 요양원이 '우리 동네'보다 커진 농촌이다.

집은 더 을씨년스럽다. 이발은 고사하고 감지도 않은 듯한 지붕에서는 온갖 풀들과 지나가던 바람과 옅어진 가을 햇살이 어울리고, 문짝은 구멍이 송송한 채 이미 제구실을 잃은 지 오래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축축한 그늘은 음산하기까지 하다. 흔히들 귀신 나올 것 같다고 하는 풍경이 동네 안 곳곳에 보인다. 오후의 햇살은 이곳에서 결코 밝지 않다.

시골 동네에 살다 보니 종종 외지에서 동네를 둘러보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들은 집을 알아보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쉽게 집을 정하지 못한다. 이들의 말에 의하면 집이 없다고 한다. 참 아이러니다. 빈집이 곳곳인데 집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눈에 차는 집이 없다는 것이다. 어쩌다 그나마 맘이 가는 집은 내놓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귀신 나올 듯한 집은 맘이 가질 않는 것이다.

이러면 어떨까? 군에서 외주를 주던, 직접 나서던 우선 빈집을 조사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새로 나온 빈집 정보를 빠르게 그 안에 포함시켜 누구나 쉽게 접근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수리 사업을 적극 지원하는 체제를 마련하는 것이다.

방법으로는 ① 특정업체가 사업을 주관하도록 지원하는 방안 ② 동네 사업으로 편성하는 방안을 고민해 보면 어떨까. ①번 사업으로는 업체가 해남군의 지휘를 받아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집수리 사업을 주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업체는 다양한 방법으로 빈집을 찾아내어 등급을 매기고, 수리와 알선을 하여 필요한 수요자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고, 동네와의 유대를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관리한다.

②번 사업은 동네 청년회 등에 그 사업을 맡기는 것인데, 이를 통하면 동네에 들어온 입장에서는 한결 유대가 쉬울 것이다. 사전에 동네 사람들과 관계가 있을 것이고, 동네 입장에서도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또한 동네 기술자의 재능기부가 있거나, 동네 사람들의 울력으로 이어진다면 공동체 복원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원금은 동네 일자리에 쓰이거나 기금으로 마련되어 동네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자치단체는 동네와 결합해서 빈집 주인을 설득하고, 동네 환경을 바꾸는데 힘을 모아준다면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가 아닐까?(아, 꿩 먹고 알까지 먹어버리면 멸종하니 이건 좀 거시기 하다.) 어쨌거나 일거양득,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임에 틀림없을 테니 군 행정에서는 깊이 고민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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