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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공부나 해요문재식(마산초 용전분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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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1.19  16: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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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학년 몇몇은 음악실에 오면 지친 얼굴들이다. 어제도 오늘도 7, 8교시까지 한다고 피곤하단다. 공부 너무 많이 하지 말고 음악도 듣고 노래도 하자고 하면 몇은 뭔 소리냐는 의아한 표정이고 한두 명은 쉬자고 한다.

어쩌다 학교가 학력의 높고 낮음을 수량으로 분류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었는지. 어쩌다 학생들이 학습과 성적의 피로에 지치고 있는지 안타까울 때가 있다.

오늘도 학생들과 음악 수업하며 공부 너무 많이 하면 머리가 터질 수 있으니 음악도 듣고 악기 하나 정해 연주도 하고 조용한 곳에서 혼자 책도 읽으라고 한다.

코로나19와 같이 생활하기로 발표되었고 학교도 예전처럼 정상 운영하게 되었다. 정상적인 교육 활동을 하지 못해 기초학력 부족 학생이 많이 늘어났고 학생들 학력이 저하되었으니 학력 향상이 필요하다며 여러 말들이 곧 나올 것이다. 그럴 수 있다. 완벽한 준비 없이 온라인수업을 했고 평가는 예전의 방식대로 하면 분명하게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또 기초학력과 학력 향상을 둘러싸고 금방 눈에 보이는 성과를 쫓는 학교의 모습이 나타날지 살짝 걱정된다. 학교와 교사들의 깊은 고민과 연구를 통한 자율적으로 실시하는 학력 향상 방법보다는 국가 차원의 일제식 평가를 통한 성적향상이 필요하다는 논쟁들로 시간을 소비하지는 않을는지 내 걱정이 어디에 전달되고 반영되지도 않겠지만 걱정은 계속된다.

우리 반 몇몇은 수업 시작하려면 꼭 이야기해 주라고 한다. 담임을 맡아 학생들에게 첫인사로 이야기부터 꺼낸 것이 시작이었다. 그날도 몇몇이 이야기를 해 주라고 했고. 괜히 시간 보내려는 서너 명의 작전임을 알면서도 이야기를 시작했었다.

"옛날에 한 거인이 살았어. 그래서 몸에 맞는 옷이 없어 언제나 집에만 있었데. 그 일을 나라 임금도 알게 되어 임금은 거인에게 옷을 만들어 주라고 명령했고, 신하들은 온 나라 옷감과 옷 만드는 사람들을 불러 거인의 옷을 만들었는데. 겨우 속옷 한 장을 만들었데. 그것이라도 받은 거인은 기분이 너무 좋아 속옷만 입고 뛰어다녀 논밭에 곡식을 망쳤데. 그러니 농부들이 임금에게 화를 냈데. 괜히 옷을 만들어 주어서 이 난리를 피우냐고 농사는 어떻게 하냐고. 임금님은 어쩔 수 없이 거인에게 곤장 열 개를 맞는 벌을 내렸데. 그래서 거인이 한양에서 곤장을 맞는데 입은 백두산에서 아프다고 소리치고 발가락은 제주도에서 까딱까닥 흔들리더래…."

한 여학생이 "선생님 공부나 해요"하며 짜증을 냈다. 내 농담도 받아주지 않던 학생, 쉬는 시간에도 같이 어울리지 않고 문제집을 풀던 학생, 시험 언제 보냐는 질문을 자주 하던 학생이었다. 이야기를 가지고 '표준단위'와 '임의단위'를 이해하는 수업으로 전환하려는 기회를 나는 놓쳐버린 것이다. 먼저 학생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기회도 놓쳐버리고 나는 당황해 얼른 말했다. "이 거인의 키는 몇 미터일까요?"

그날 저녁 학생 엄마한테 수업시간에 수업하지 않고 왜 이야기만 하냐는 전화를 받았었다. 교사로서 설명해야 하는 이런저런 이야기하기가 귀찮아 미안하다고만 했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을 한 이유로 일제식 평가를 되살려 학생들한테 학생다움의 순수를 빼앗지 말기를. 교사들도 부디 학생들을 계량화된 성적 올리기 위한 평가의 피로에 가두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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